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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의 가지각색 삶

굿바이, 정들었던 나의 축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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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시절, 나의 풋사랑이었던 그 애는 축구를 참 잘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남자애보다는 그가 하는 축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축구를 하는 남자는 참 멋있구나!'라고 맘 속으로 생각했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한 때 불어오는 바람 같았던 그 풋사랑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고 한동안 축구에 대하여 관심도 없이 일상에 묻혀 지냈다.

   다시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목회자 수련회 때였다. 목사 사모들끼리 번외 게임으로 축구를 한 이후부터였다. 축구공  2개로 하는 것인데 양쪽 아무 골대에라도 골인을 하면 득점이 되는 해괴한 축구였다. 아무나  골키퍼가 될 수도 있고 포지션 따위는 없는 축구였다. 그때 난생처음 축구공을 차 보았다. 그날 함께  축구를 하는 사모님들 중에는 축구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분도 많았다. 축구공을 끌어안고 누워 버리는 분도 있었고 공을 안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분도 있었다. 공을 차기보다는 공을 안고, 빼앗고, 던지는 경기로 와전되고 있었다. 그래서 반칙이 난무한 경기였다. 그런 중에 공을 몰고 다니며 골을 몇 개나 넣었던 나는 그날의 골잡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축구에 재능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분들이 워낙 축구에 대해서 몰라서 그랬겠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경기였지만, 경기를 본 적은 있어서 드리블도 하고 트래핑도 했었다. 감아 차기는 물론 방향 전환도 했던 것 같다. 공을 몰고만 가면 골인이 되었다. 그 현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한 분인  '헤브*' 여자 축구 대표님이 넌지시 제안을 해왔다.

 

 "여자 축구단 단원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한 게임 뛸 때마다 **원씩 드릴 게요."

 

   그 대표님께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대표님의 농담 섞인 러브콜을 받고 나니,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라고 자문하면서도 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공을 보면 발을 대고 싶고 공만 보면 가슴이 뛰었다. 솔직히 말하면, 배운 적도 없고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 썩 잘하는 실력 아닌 줄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이 주로 하는 운동이라 여자 치고는 잘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축구 사랑은 계속되어서 시댁에서 축구 전도사가 되었다.  인원수 많은 시댁 식구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바뀌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은 모이면 일단 축구를 했다. 식구들끼리 이동하다가 학교 운동장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피고 잠시 내려서 축구를 하곤 했다. 시댁의 남자들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싫은 기색은 없었고 30명이 넘는 시댁 식구들이라서 축구를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댁 식구들이 모이면,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했다. 명절이면 모여서 맛있게 먹고 그다음은 축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네댓 번을 하기도 했다. 수영장에서 물축구를 하고 해변 모래사장에서도 했다. 3명의 손아랫 동서들은 처음에는 쭈뼛거리더니 시간이 갈수록 악착같이 수비를 잘 해냈다. 골키퍼를 잘하는 동서도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딸은, 풋살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에는 아디다스 초청으로, 프랑스 축구 선수 포그바가 내한했을 때 홍일점으로 포그바 팀에 합류하여 '미운 우리 새끼팀'과 예능 축구를 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ZmdAjvLxcI (포그바 챌린지 선정)

 

  나는 3년째, 학교 사제동행 축구대회에 홍일점으로 참석했다. 퇴임을 앞둔 여자가 남자 교사들과 남학생들 틈에 끼어서 풀타임으로 축구를 한다는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kzg0M4baQ&t=86s (60이 넘어도 축구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에, 사제동행 축구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하던 중에 손목 인대를 다쳤다. 그때부터 K-리그나 A 매치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부상당하는 장면만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축구는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왔다. 이쯤에서 축구를 끊어야 할 것 같았다.

https://brunch.co.kr/@mrschas/76 (결국 사달이 났어요)

 

  그러는 와중에 알고리즘에 따라 올라온 영상에서 한국희라는 어린 여자 축구 선수를 본 적이 있다. 홍일점으로 열심히 뛰는 모습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게다가  교장선생님은, 가을 축제 때 사제동행 축구를 하자며 계속 말을 걸어오신다. 그래도 맘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축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쉬울 때 떠나야 할 것 같다. 전문 선수들이 은퇴할 때의 기분이 어떠할지 가늠이 되었다. 또한 축구는 당일에 나가서 뛰기만 하는 게 아니다. 한 번의 경기를 위해서 최소 한 달 이상 맹훈련을 해야 한다. 부상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준비하는 훈련도 부담으로 느껴졌다.    https://brunch.co.kr/@mrschas/61 (야밤에 뜀박질)


  그렇지만 인바디 체중계를 잘 분석해보면 체지방, 내장지방 등이 늘 위협으로 도사리고 있다. 단순히 걷기 운동만으로는 그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없을 것 같다. 건강검진을 할 때, 문진표에, 당신은 일주일에 땀이 약간 흐를 정도의 운동을 몇 번 정도 하십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일주일에 최소 1번 정도는 땀을 좀 흘려야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축구처럼 재미도 있고 땀을 흘리며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때마침,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구청에서 운영하는 체육문화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축구를 대신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그곳은 탁구장, 배드민턴 코트, 헬스장, 에어로빅 연습장이 아주 멋지게 잘 구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축구보다는 부상입을 확률이 낮을 것 같다.

  탁구와 배드민턴을 할 수 있는 라켓과 공, 셔틀콕 등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주에 그곳을 방문하여, 탁구와 배드민턴을 각각 1시간씩 쳤다. 생각보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센터는 만석이었다. 그렇다면 때로는 자리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 때는, 기다리는 동안에 헬스장을 활용하여 근력 운동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에어로빅 장에서 딸에게 M댄스를 배울 참이다. 딸에게 M댄스를 한 번 배워본 적이 있는데 한 스텝을 익히는 데도 몹시 어려웠고 땀이 났던 기억이 난다.  딸은 M댄스는 물론이거니와 응원 단장 출신이어서 딸에게 응원단 안무를 배워도 될 것 같았다. 축구를 끊고도 운동할 수 있는 방안이 다 세워졌다. 얏호!

https://youtu.be/LdvCDorrhQI

(응원단)

https://youtu.be/yE4tA2Q7Gzg

(M댄스)

 


  축구를 끊으려고 하니, 귀엽고 앙증맞은 나의 축구화에게도 안녕을 고해야 할 판이다. 나의 축구화를 신을 새로운 주인공이 있다면 기꺼이 축구화를 전달해주고 싶다. 내 생애에 필드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런데 딸은 여전히 풋살 동호회에서 활동을 할 것 같은데 제발 다치지 않고 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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