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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제는 홍시가 맛있다 주말에 시골을 다녀왔다는 교회 집사님이 잘 익은 홍시를 들고 오셨다. 나는 홍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와는 달리, 남편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홍시였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홍시가 싫지 않다. 나도 이제 홍시가 달고 맛있다. 집사님이 주신 달달한 홍시를 먹으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겨보았다. 그리고 집사님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홍시를 잘 먹지 않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감나무가 없었지만 옆집 흰바우댁은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초가 삼 칸 오두막집이었던 우리 집과는 달리 흰바우댁은 고대광실 큰 집이었다. 골목으로 통하는 흰바우댁의 대문은 넓었고 좌로는 사랑채가 있었다. 그 사랑채만 해도 우리 집보다 컸었다. 오른쪽으로는 외양간에 살찐 소들이 몇 마리 있었다. 넓은 마당을.. 더보기
14. 다듬잇돌 고향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가야산 자락이 나의 고향이다. 가야산의 매력을 아는 자가 많으리라. 가야산의 남산인 매화산의 매력과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도 유명하다. 언젠가 그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수필 문맥이 떠올랐다. 박지원의 글에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강물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보고 듣는 것이 수시로 병이 됨이라.’ 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 되짚어보니 더욱 맘에 와닿는다. 고향 마을은 유판마 혹은 유촌(兪村)이라고 불렸다. 동구 밖에서 고무줄놀이, 학교 놀이를 했던 곳에 큰 버드나무가 있어서 버들류 ‘柳’의 유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 마을은 앞산에서 쳐다.. 더보기
12. 응답하라! 첫사랑 학교 가는 길은 멀었다 [출처:합천 문화재청] 왕따 나무 나의 고향은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자락에 있다. 윗마을은 솔악골, 묵촌이 있고 매일 해가 넘어가던 곳에는 독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아랫마을에는 구정리와 장터가 있고 야성강을 건너서 구장터에 이르면 샛길도 있었다. 야로의 명물 ‘왕따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 핏물 얼룩이 말라붙어 있는 샘이 있었다. 도살장이 있던 곳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핏물이 씻겨져 내리고 황소 귀신이 마치 머리채를 잡아채는 듯 섬찟하고 무서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멋모르고 신비한 세상으로 끌려가는 꼴이었다. 일상이 바빴던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입학식에 갈 수 없었다. 옆집에 사는 웃터 아재가 어차피 자기 아들, 기철이를 입학시키러 가는 김에 나까지 데려갔다. 왼.. 더보기
(2) 오일장 장돌뱅이 어머니는 농사꾼으로 살다가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또한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당신의 자식들이 한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라 여기셨다. 논에서는 벼농사, 밭에서는 채소를 수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바가지(지명)' 논 다섯 마지기 '띠뱅이(지명)' 밭 하나, 그리고 한 평 될까 말까 했던 앞산 밑에 있던 정구지(부추) 밭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5남매 입에 풀칠도 근근이 할 판이었다. 어머니가 농사일에서 눈을 돌려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내가 아직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나는 '고령장'에 가야 하니 옆집 아제 따라서 학교 댕겨 오거래이." 입학식날 아침에 어머니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부리나케 고령장으로 향하셨다. 그날은 오일장 중에서 고령장이.. 더보기
(1) 기와집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어디 쯤 에서 부터 해낼 수 있을까? 내 유년의 끄트머리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가장 아득한 곳에서 떠오르는 기억은 이것이다. 우리 집의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던 날이었다. 아마도 내가 너댓 살 쯤이었던 것 같다. 가난이 뭔지? 인생이 뭔지? 그런 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기와를 이는 그날은 기분이 왠지 좋았다. 신이 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와 이는 일을 돕느라고 우리 집에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의 흙바닥에 밥상을 놓고 한창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차림이라 평소보다 반찬 가짓수가 많았던 것 같았다. 학이 그려져 있던 사기 접시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지글지글 전을 부쳤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정신 없어서 죽겠구만,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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