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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이의 형은 우리 학교의 '미들스타' 멤버
중일이가 수업이 끝날 무렵에,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 모양으로 부산스럽다.
"너, 왜 그래?"
-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돼요?
"종료 5분 전인데? 조금만 참아봐."
-쟤, 체육복을 교복으로 미리 갈아입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야 후딱 집에 갈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학생이 중일이의 속마음을 전달해준다.
"왜?"
- 오늘 재네 형이 미들스타리그, 8강전에 출전하잖아요?
"형? 중일이네 형? 누구지?"
- 중원이 형이 제 친형이에요. 몇 해전에 졸업한 다예 누나는 제 사촌이고요.
중일이가 눈의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잘 난 척을 한다.
'헉, 중원이라면?'
아, 중원이는 지난해에 가르쳤던 학생이다.
중원이는
예비령이 울린 후에 어슬렁거리며 교실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늘 빈 책상이고 맨 손이었다. 그리고 그냥 책상에 엎드리기부터 했었다.
"야, 수업을 하려면 필통을 준비하고 교과서를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
- 선생님, 저 머리가 아파요.
"너는 수업 때마다 어딘가 아프더라?"
- 그냥 영화 보면 안 돼요?
"여기가 영화관이냐?"
수업 시간 동안에 중원이를 몇 번 깨우고 잔소리하는 게 그 학급의 일상이었다. 수행평가를 보면, 이름 석자 달랑 써놓고 하얀 백지를 제출하던 학생으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제동행 축구시합
올해 5월에 사제동행 축구시합이 있었다. 그때 중원이가 미들스타 멤버인 것을 알고 속으로 짐짓 놀랬다. 게다가 중원이와 함께 축구 경기를 해보고는 더욱 놀랬다. 수업시간에 보았던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축구공을 향하여 불꽃같은 눈빛으로 내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디딤발을 정확하게 놓고 임팩트 있게 슛을 하면 그 파워가 상상외였다. 심지어 극장골 같은 골인을 하기도 했다. 중원이는 미들스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축구 인재였다.
사제동행 축구 시합을 끝낸 후에 우리 학교 미들 스타 팀을 분석해 보았다. 팀워크도 엉성하고 자신의 포지션을 잘 지켜내는 모습도 시원찮았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게 기량이 우수해 보이는 선수도 없었다.
60이 넘은 나는 홍일점으로 교사팀에 소속되었다. 교사팀과 미들스타팀 간에 시합을 하기로 했다. 축구 경기에서 풀타임을 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승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무난히 나의 포지션을 잘 지키기 위해서, 나는 밤마다 뜀박질을 했었다. 만약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경기장에 서면 2~3분도 뛸 수 없을 게 뻔했다.
그 대회 결과는 교사팀이 4골 차로 이긴 걸로 기억이 된다. 스코어는 5대 1였던 것 같다. 피가 펄펄 끓는 학생팀이 교사팀에게 졌다는 것은 미들스타 팀의 전력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https://brunch.co.kr/@mrschas/61
국대 감독은 벤투, 우리 학교 감독은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 미들스타 팀이 <인천 유나이티드 미들스타리그>에 출전하게 되면서부터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팀원들과 함께 축구 연습을 하셨다. 교장 선생님은 주전 선수들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후보 선수들의 이름까지도 다 기억하시며 학생들과 함께 훈련을 하셨다. 감독님은 학생들에게 일일이 포메이션을 설정해주시고 공을 다루는 기술들을 가르쳐주셨다. 올해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교장선생님의 체력은 현역 선수 못지않은 것 같다.
교장선생님은 미들스타 팀 훈련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각 학급 대항으로 펼쳐지는 <점심 리그>에 심판을 보신다. 불만 없는 명 심판으로 학생들에게 인기짱이다. 혹시 교장 선생님이 출장을 가시면 학생회 임원들이 심판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는 여기저기서 심판에 대한 불만과 잡음이 들린다. 교장선생님은 성대 결절이 올 정도로 고함을 치시며 운동장을 뛰어다니신다.
코치는 체육 교사들~
두 분의 체육 교사도 매일 아침 일과 전에 미리 출근하여 미들스타 팀의 훈련 스파링 파트너로 땀을 흘리신다. 특히 O교사는, 중학교 때 <인천유나이트 미들스타리그>에 출전하여 우승한 경험까지 있는 분이다. 그러니 미들스타 선수들은 그들의 우상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의 훈련은 지칠 줄 모른다
선수들은 매일 아침과 방과 후에 지치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한다. 감독이나 코치가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도 창문 너머로 운동장을 내다보며 훈련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제시간에 등교하기도 힘들 텐데, 전문 축구부도 아닌 일반 학생들이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고 방과 후에 남아서 땀을 흘린 이 경험은 자신들의 삶의 자양분이 될 것 같다.
승승장구, 여세를 몰아가는 미들스타 팀
5월부터 시작된 다섯 번의 예선 경기를 차분히 잘 뛰었다. '홈 엔 어웨이' 방식으로 예선이 치러졌었다. 우리 학교에서 경기가 있는 날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남아서 응원의 열기를 더했다.
경기에 이길 때마다 나는 남몰래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팀워크나 기량으로 보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미들스타 경기에 대한 관심도가 고조되어갔다.
우리 학교 미들스타 팀이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그 본선, 16강전에 승리했다는 내용을 학교 교육 소식지(학교 신문) 1면 톱기사로 실었다.
그런데 그 신문 발행에 대한 기안이 상신되었으나 최종 결재를 일단 멈추어 두기로 했다. 신문 발행일이 공교롭게도 8강전이 있던 다음 날이었다.
교장선생님과 긴급히 의논했다.
"오늘 경기를 하고 혹시(4강 진입을 감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기면 이 부분의 기사를 고쳐서 발행하기로 해요."
-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설마 우리 학생들이 8강에서 이기기까지 하랴?'
'하지만 1% 가능성이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반신반의 하면서도 좋은 결과로 학교 신문의 그 기사를 고쳐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많은 교사들이 응원하러 간다. 그날도 교사들은 시원한 물과 김밥을 준비하여 경기장으로 향했다.
얏호, 결국 신문 기사를 수정하여 다시 발행했다.
"축구인재들- 결승 가즈아~"라는 제목으로 학교 신문의 기사가 수정되었다.
우리 학교 미들스타 팀의 수문장인 골키퍼는, 어려운 골을 많이 막아내어 당일 경기의 MVP가 되었다.
우리가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듯이, 우리 학교는 <인천 유나이티드 미들스타>에 모두가 진심이었다.
중원이는 운동장에서 빛난다
4강 진출이 확정된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선수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일과가 마무리될 즈음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선수들이 또 운동장을 돌기를 하고 있었다.
그 훈련은 히딩크식 전법이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원동력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4309362#home
그날은 20-30여 명의 선수들이 큰 원을 만들고 빙 둘러서서 몸풀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 원의 한가운데에 서서 스트레칭을 리드하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중원이다. 그 자리는 코치나 주장 선수가 설 자리 같은데? 영어 수업시간에 봤던 모습이 아니다. 참 멋지다. 중원이의 스트레칭 리드에 맞추어서 모든 선수들과 체육 교사들까지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미들스타리그가 없었다면 내 기억 속의 중원이는 영 형편없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중원이는 충분히 멋지고 괜찮은 학생인 것 같다. 중원이는 운동장에서 빛나고 있었다.
만약 미들스타 팀이 대망의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면, 학교 신문의 호외(특집판)를 발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노력하고 준비하여 멋진 결과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신이 나는 법이다.
PS: 22.10.11. 결승 진출!
얏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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