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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꾸옥 4박 6일 플랜 배포

'놀이 공원'을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 어트랙션의 유혹은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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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꾸옥 여행을 떠나기 달포 전에 일이 터졌다. 중증환자인 나의 아들을 돌보던 활동지원사 내외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앞이 캄캄했다. 급하게 공백을 메울 활보샘을 세팅하는 일이 문제였다. 그 빈자리에 사람이 금방 투입된다 해도 할 일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린다.

우리 부부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사흘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다시 활보샘들의 근무 시간을 재 편성하여 세팅하려니 제약사항이 많았다. 기존에 하고 있던 활보샘들의 개인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규정 등이 미묘하게 서로 맞물렸다.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아들을 케어하고 있는 활보샘이 다른 곳에서 일을 겸하고 있기도 하니 그것도 감안해야 했다. 꼬이고 꼬였다. 얽히고 얽혔다. 그런 실타래 같은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대통령은 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모르겠네요. 한 가정의 일도 이렇게 복잡한데..."

 

하다 하다 지치니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2 동안 활보샘들의 개편된 근무조를 짜는 일에 신경 썼다. 그러구러 간병 시스템은 겨우겨우 완성됐지만 새로 투입된 한 분에게 일을 익히도록 가르쳐야 했다. 연세가 있는 분이라 돌아서면 익혔던 것을 포맷하듯 다 잊어버렸다. 중증환자 돌보기에 참 애매한 분이었다. 주말 저녁 시간대에 근무하려는 활보샘을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의 모든 센터에 의뢰를 하여 겨우 그분을 구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알려 드렸다. 그분이 일에 익숙해져야 예정되어 있던 푸꾸옥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판이었다. 여차하면 여행을 취소하게 생겼다. 그 여행은 지난해 8월에 이미 예약해 둔 것이었는데...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신경을 많이 썼더니 남편은 '이명', 나는 '이석증'이 생겼다. 남편의 귀에서는 하이 소프라노 같은 소리가 자꾸 난다고 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머리 탈모부터 발톱 무좀까지 온몸이 빈틈없이 다 아프다더니 이제는 귓속까지 문제네요."

 

기가 막혔지만 농담이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남편을 놀리 듯하며 한마디 했다. 남편도 스스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비인후과 검진 결과로, 귀에는 아무 이상이 없단다. 심한 스트레스로 뇌에서 보내는 소리라고 했다.

 

이석증은 나의 지병이었다. 약 40년 전부터 심한 스트레스가 오면 확 어지러워졌다. 그럴 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분히 안정을 취하면 어지러움이 가라앉았다. 그게 이석증인 줄도 몰랐다. 결혼 이후에도 환절기만 되면 그 증세가 도졌다. 1년에 몇 번은 어지러움으로 된통 앓곤 했다.

 

다행히 5년 전부터 그 낌새가 깜쪽같이 사라졌다. 내 짐작으로는, 황토 패드 덕분인 것 같았다. 황토의 원적외선이 나의 이석증과 비염을 가시게 한 것 같았다.

 

https://brunch.co.kr/@mrschas/22

 

아무래도 이석 증세가 약간 되살아 난 듯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 일단 핑그르르 돌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었다. 푸꾸옥으로 여행을 가려면 이런 상태로는 비행기나 탈 수 있을지, 딸 내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지, 걱정됐다.

 


 

나는 나이에 비해 잔병치례를 하지 않는 편이다. 2020년 연말정산 처리를 하는 홈택스 자료를 보고 놀랐다. 1년 동안 나의 의료비 지출이 '0원'이었다. 그 정도였다. 나는 대놓고 먹는 약도 없다. 혈압, 당뇨, 고지혈도 없다. 병원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다. 감기도 오는가 싶다가도 달아났다. 그런데 이석증이 다시 낌새를 보이니 속이 상했다.

 

여행을 앞둔 것도 그렇지만 일단 어지러운 증세에 대해 정확한 진료를 받아 봐야 할 것 같았다. 거의 10년 만에 '이O우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현재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O우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면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게 이석증이 아니면 뇌에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증상 호전되지 않으면 MRI를 찍어보셔야 합니다."

 

겁이 털컥 났다. 이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병이고 싶었다. 다행히 두어 번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어지러운 증세가 줄어들었다.

 

"사실 해외여행을 계획해 두고 있어요."

"안돼, 안돼. 심하게 요동치는 놀이 기구 같은 것은 타면 안 돼요. 일단 열흘 치 분량의 약을 지어 드릴 테니 여행지에서도 약을  챙겨 드세요."

 

처방전을 약국에 제출하기 전에 그것을 사진 찍었다. 도대체 어떤 약이 처방되었는지 궁금했다. 귀에 있는 돌을 제자리로 돌려주는 약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처방전에 있는 약 이름을 검색하니 대체적으로 안정제 종류였다. 이석 치료보다는 나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약으로 조제된 듯했다.

 


 

진료 마무리쯤에 의사 선생님이,

 

"OOO이는 요즘 어때요?"

 

어? 갑자기 이O우 선생님이 내 아들의 안부를 물어보셨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나의 진료 카드에 그 선생님만 알아볼 수 있는 메모를 적어두신 듯했다.

 

"아참, 며칠 전에 바깥 선생님도 다녀가셨는데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더군요."

'어, 이렇게 까지 기억하고 계신다고?' 나는 내심 놀랐다.

12년간 세미 코마 상태인 중증 환자 아들을 돌보는 일을 전담한 남편이 성할 리가 없다. 그래서 더욱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렇죠, 워낙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지치지 않을 수가 없네요. OOO 아빠가 고생이 많아요."라고 나는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우리가 부부인 줄도 아시고 또한 아들이 사고로 누웠다는 것도  기억하고 계셨다.

 

이O우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아들의 사고 당시에 내 통장으로 후원금을 보내 주셨던 분이었다. 우연히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아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알게 되셨던 모양이다. 당시에 아들의 재활 과정이 방송에 몇 차례 나와서 그랬을 것 같다. 하여간, 세상에 이런 의사 선생님도 있다.

 


 

빈원더스 놀이 공원에서 우리는 취사선택했다.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탈 수는 없으니... 그런데 알고 봤더니 우리 모두는 '헛똑똑이'기도 했지만 공통분모가 하나 더 있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겁보'였다.

 

빈원더스를 찾은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대규모 놀이공원으로 입장은 했다.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와 높은 상공에서 유원지 일대를 바라볼 수 있는 관람차 등이 있었다. 여러 어트랙션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관람차는 무서워서 싫다, 오션 트레인 코스터는 어지러워서 싫다, 스카이 드롭 타워는 심장 떨어질까 봐 싫다, 회전목마는 유치해서 싫다,라고 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것저것  손꼽아 보니 우리가 탈 것은 결국 몇몇 개였다. 우리 부부는 그렇다 치고 딸 내외가 그럴 줄은 몰랐다. 의외였다. 우리 모두는 쫄보였다. '쫄보 협회'도 결성해야 할 것 같았다.

 


 

[라이더를 더 타고 싶은 1인]

먼저 '바이킹 리버 라피드 라이더'라는 것을 탔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탔다. 물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적당히 스릴도 있었다.

 

"동강에서 래프팅을 탔던 것과 비슷하네." 내가 말하자 남편은 업된 목소리로,

"탈 만한데, 난 이거 괜찮은데."라며 신이 잔뜩 나 있었다.

 

혹시 어지러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됐다. 이O우 선생님이 처방해 주신 약을 꼭꼭 챙겨 먹어서 그랬는지 다행히 괜찮았다. 어지러움도 없었다. 그러나 다시 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쫄았다. 나는 쫄보 맞다. 그런데 보아하니, 남편은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데, 나는 한 번 더 탈 수도 있겠는데..."

"아빠 더 타고 싶으세요?"

"응!"

"아빠, 의외네요. 아빠가 젤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일어나요. 더 스릴 있는 것도 있어요."

 

남편을 살살 설득하여 일어나게 했다. 남편은 더 타고 싶은 어린아이 같았다. 푸하하하.

 

그다음 어트랙션은 바로 '아마존 볼케이노'였다. 입장하기 전에 볼케이노 보트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저히 그것은 탈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이O우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돼, 안돼. 심한 것은 안 돼요. 큰 일 나요."라던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애당초에 깨끗하게 포기했다. 쫄보 같은 우리 일행은 무서움을 감추고 보트에 탑승하고 있었다. 관리 요원에게, 어디서 사진을 찍으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분이 친절하게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셨다.   

[쫄보들의 함성]

 

마침내 쫄보, 세 명이 쫄깃한 볼케이노 어트랙션을 해냈다. 심장마비 걸린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살아나서 좋아하는 명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 나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나도, 나도, 첫 오르막을 끝내면서 보니 두 번째 것의 경사가 장난 아니더라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

"장난 아니던데요."

 

세 사람 모두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얼마나 무서웠던 가를 얘기했다.

 

이어서 딸 내외만 '이글 워리어'라는 일종의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남편은 아마존 볼케이노에서 십 년 감수했는지 그것을 함께 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입구에서 쫄보 신세를 한탄하며 딸 내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각종 어트랙션]

 

내게는 놀이 공원을 좋아하지 못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쫄보, 겁보들의 놀이 공원 체험은 '맛보기 체험' 정도로 끝냈다.


 

 


[유튜브 쇼츠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P_sNnfSwJ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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