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종업식날 감동하다
종업식날이었다. 학교에는 학생이 없었다. 비대면으로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일과 후에 몇 명의 학생들이 교무실에 들어왔다. 사탕, 초콜릿을 담은 쇼핑백을 들고 포스트잇이 잔뜩 붙은 롤링페이퍼를 들고 왔다. 갑자기 내 몸에서 행복 호르몬이라는 도파민이 솟아나는 듯했다. 2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것은 2년간 코로나19와의 전투에서 학교가 이겼노라고 승전고를 울리는 듯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급의 학생들이 각 과목 선생님들께 자신들의 감사한 맘들을 적어서 마무리하는 대면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처음에 영어가 재미없었는데 수업을 들을수록 흥미가 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ㅇ현 드림
정ㅇ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점점 교사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거다. 학생들이 코로나 시대의 용사다. 교사를 감동하게 했으니. 조잘거리며 학생들이 교무실을 나간 후에 나는 2년간의 여정, 코로나19 시대의 학교 풍경을 적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학교 밖에서 염려하고 걱정했던 분들에게 학교 풍경이 어땠는지 말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학생들이 어떻게 그 코로나19를 비켜서 기특하게 학교생활을 해왔는지 펼쳐 보이고 싶었다.
아마도 악한 것이 바이러스에게 학교를 덮치라는 특명을 내리지 않았을까? 언감생심이다. 절대 그럴 수 없으리라. 학생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믿었다. 우리는 함께 학교를 지켜냈던 것 같다. 신성한 학교 교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빨갱이도, 학교 폭력도, 민원도 아니었다. 바로 저 원수 같은 코로나19였다. 총소리만 들리지 않았을 뿐이지 전시 상태였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잘 지키고 묵묵히 학사일정대로 학업을 이어갔다. 학생들에게 박수 한 번 보내고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
# 모든 게 처음이었다
기억하기로는 그해 신입생은, 6월에야 처음으로 교문을 넘었던 것 같다. 마스크를 끼고, 오픈 채팅방이나 단톡방으로 조·종례를 했으니 사제 간도 친구들과도 누가 누구인지 흐릿하게 알 정도였다. 난리가 나도 단단히 난 것이었다. 그 당시에 적은 나의 시 한 구절을 보면 참담했던 현실이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길은 절단 났다.
2020. 3. 29. 밤 12시 현재
이 밤을 새우고 나면
그대를 향할 물꼬라도 틔려나
COVID-19와 겨루며
지쳐있을
그리운 이여!”
학생들은 e-알리미를 통한 가정 통신문을 보고 학교 일정에 잘 따랐다. 우리 학교는 과대 학교(32개 학급)이며 과밀 학급(학급당 최대 35명 재적)이라 코로나 상황에 따라 1/3이 혹은 2/3 체제로 1개 학년, 혹은 2개 학년이 등교했다. 1개 학년만 등교할 때면 각 학급 간 거리 두기를 하려고 교실 한 칸씩을 띄워놓고 다음 교실을 사용했다. 한 학급을 두 개 팀으로 나누어서 조·종례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건 진짜 힘든 일이었다. 특정 교과 교사가 앞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뒤 교실에서는 다른 교사가 대신 임장(臨場)하여 지도하면서 그 교사가 앞 교실에서 수업을 끝내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과대 학교는 점심 먹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6인용 테이블에 단 2명씩만 앉아서 식사하게 되니 점심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테이블에 칸막이한 후에는 4명씩 앉을 수 있었다. 그 많은 학생 중의 한 명도 식판을 쏟는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았다. 우리 교사들은 급식 지도를 하면서 학생들을 믿었다. 그렇게 할 줄 알았다. 특히 방역 도우미 어머니들이 등교 맞이, 급식 지도, 발열 체크 등을 도와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온라인 개학으로 더 빨리 당겨온 ICT 기반 교육
수업은, EBS 플랫폼을 활용하여 수업녹화 영상을 올리거나 과제 제출 방에서 학생들의 학습 이력을 체크했다. 과제 제출 방에 올리지 않은 학생들은 학습지를 출력하여 학습활동을 완성한 후에 대면 수업이 있는 기간에 제출했는데 학급당 한 상자씩이나 됐다. 동아리 활동도 대면/비대면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 되지 않았다.
온클 강좌 내용란에 방법을 잘 안내하면 학생들은 저마다의 기량을 발휘하며 동아리 활동을 해냈다.
등교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학교 모습이 궁금할 것 같아서 수업 영상 만들 때 꽃이 만발한 학교 전경을 슬라이드에 넣기도 했다. 영산홍 유채꽃이 만발했던 그 봄에 학교 정원은 무관중 공연을 하는 듯했다. ppt로 수업자료를 다 만든 후에 그것을 비디오로 편집하는 방식이었다. 말이 그렇지 처음에는 모두가 당황하여 서로 물어보면서 헤쳐나갔다. 형성평가는 구글 설문지 폼으로 답을 써서 제출하거나 청중 반응 기반 학습 플랫폼, 퀴즈, 토론, 게임 등을 제공하는 '카훗'으로 답지를 제출하면 자동으로 성적이 보였다. 코로나19가 잘한 일 중의 하나는 ICT 기반 교육을 앞당겨 준 일이라고 본다. 이런 ICT 기반 활동들을 생활기록부에 적을 수 있었다. 대면 수업이 시작되던 날, 이미 학생들과 래포가 형성되어 있어서 교실의 TV에는 이미 환영의 문구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 양방향으로 쌓은 사제지간의 사랑
2020년 후반기부터는 비대면 기간에 전면으로 실시간 쌍방향으로만 수업했다. 의외로 그것은 교실 안에서보다도 매력 있는 수업이 되었다. 학생들이 화상 수업을 통하여 발표하며 영어를 읽으면 집중도가 더했다. 특히 ‘화면 공유’를 하여 수업 CD의 영상이 아무런 애로도 없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었다. 아하, 온라인 수업은 학생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교실 수업에 못지않은 학습효과가 있구나. 학사일정을 펼쳐놓고 온라인 수업에 적당한 수업 형태와 대면 수업 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갈래 잡아 두는 일이 팁이었다. 대면/비대면 수업이 스위치 되어도 수업은 자연스럽게 잘 이어져갔다. 특히 나의 수업은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것이어서 발표 순서가 그대로 이어져서 모든 학생이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다. 우리는 이인삼각 경주처럼 함께 갔다.
“ 영어 선생님, 차례차례 발표시키는 게 조금 귀찮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 배ㅇ형 드림
숫기 없던 학생의 고백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특히 자가격리 중인 학생을 위해서 온클 강좌에 학습 자료를 올려두는 일은 더군다나 고무적이었다. 5개의 학급을 가르치니 수업 진도가 상호 맞지 않을 때는 콘텐츠 업로드로 진도를 맞추었다. 다행인 것은 나이에 비하여 그런 ICT 기반 수업을 하는 것이 내게는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이 다가오면 시작 전에 매뉴얼을 정확하게 숙지하기만 하면 못 할 일은 없었다.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러 오는 선생님들이 꽤 있었다. 대변/비대면 수업을 무난하게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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