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썸네일형 리스트형 (2) 오일장 장돌뱅이 어머니는 농사꾼으로 살다가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또한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당신의 자식들이 한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라 여기셨다. 논에서는 벼농사, 밭에서는 채소를 수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바가지(지명)' 논 다섯 마지기 '띠뱅이(지명)' 밭 하나, 그리고 한 평 될까 말까 했던 앞산 밑에 있던 정구지(부추) 밭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5남매 입에 풀칠도 근근이 할 판이었다. 어머니가 농사일에서 눈을 돌려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내가 아직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나는 '고령장'에 가야 하니 옆집 아제 따라서 학교 댕겨 오거래이." 입학식날 아침에 어머니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부리나케 고령장으로 향하셨다. 그날은 오일장 중에서 고령장이..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