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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나물을 캐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소쿠리에 담긴 나물을 굳이 뒤집어 부풀렸다. 부피가 많아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물을 그만 캐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필 발밑에 싱싱한 나물이 눈에 띄곤 했다. 그러면 논두렁에 앉아서 나물을 더 캤다.
"꼭 집에 가려고 할 때면 나물이 더 많이 보이네."
조무래기들은 돌아가던 길을 멈추고 허겁지겁 다시 나물을 캐곤 했다. 그러면 이내 사방이 어둑해졌다.
"원래 그런 기라. 집에 갈라카마 좋은 기 더 마이 보이는 기라."
할머니는 소쿠리에 가득 담긴 나물을 받아 들며 말씀하셨다. 그것이 잘했다는 칭찬으로 들렸다.
50여 일 정도 수업을 하고 나면 나는 교직을 떠난다.
요즘 들어 부쩍 학생들이 더 예뻐 보이고 사랑스럽다. 학생들과 호흡도 더 잘 맞는다. 좋은 학교에서 퇴임하게 되어 행복하다. 학생도, 동료 교사도 다 좋은 학교다. 떠나려고 하니 좋은 것이 더 많이 보인다. 퇴임을 앞둔 하루하루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요즘 들어, 나물을 캐러 갔다가 집으로 가려고 할 때 나물이 더 잘 보였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수업 시작하기 2분 전에 예비령이 울린다. 그 순간 복도가 휑하다. 학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땡착석'이라는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들이다. 수업 시작하기 전, 2분 동안 학생들은 교과서와 학습지를 준비하여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학급당 재적이 30명이 넘지만 일사불란하다. 전교 학생수가 1,000명이 넘어도 모두가 잘 지키는 '땡착석'은 그들의 몸에 밴 좋은 전통이다.
"저, 학습지를 미처 못 챙겼어요."
"사물함에서 꺼내 와."
"그러면 땡착석 위반이에요."
꼭 그렇게 따지는 학생이 있다.
"선생님이 가라고 했는데도 땡착석 위반인가?"라고 내가 물어보면,
"담임선생님이 그런 거 모두 미리 준비해 있어야 된다고 했어요."라고 꼬질러바치는 학생이 있다.
그랬던 모양이다. 미리 다 준비해 있도록 담임 선생님들이 잘 지도해 둔 덕분이었다.
그렇게 수업준비를 잘하여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점심 리그'나 '스포츠클럽의 날' 때 학생들의 모습이다. 그때는 세상없이 활발하다. 또한 학교 축제날 공연을 할 때는 연예인을 뺨칠 정도로 끼가 많다. 7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거의 프로급이다. 틈틈이 방과 후에 연주 연습을 하여 축제일에 공연을 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공부할 때는 하고 축제나 스포츠에는 숨겨둔 재능을 발산한다.
[코로나 이전 축제 때,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
지난해 스포츠 클럽의 날에, 진행팀이 막간을 이용하여 5곡 정도의 노래를 틀어 준 적이 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다 같이 떼창을 하며 춤도 추었다. 미리 불러본 노래도 아니고 함께 호흡을 맞춘 춤도 아닌데... 공부는 언제 하고 노래나 춤을 또 언제 그렇게 다 익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노래인데 저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격세지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조별 활동을 할 때, 버즈 학습(학생 모두가 토의에 참여하여 발언할 수 있도록 한 소집단 학습 방법)으로 진행하다가 타이머 소리가 울리면 학생들은 단숨에 제자리에 앉는다. 학생들의 민첩함은 수준급이다.
본관과 후관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지나다니면 하루에 두서너 학급과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날마다 몇 백번이나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가르친 적이 없는 학생일지라도 만나면 인사부터 한다.
꽃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사랑한다고 하면 더 잘 자란다는 말이 있다. 동물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더 튼튼해진다고도 한다.
하물며 많은 학생들에게 매일 사랑한다는 인사와 함께 에너지를 받으니 나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연말 정산을 하기 위하여 홈텍스에서 자료 내려받기를 했는데 나의 연간 '의료비' 지출은 '0원'이었던 적이 있다. 퇴임을 앞둔 교사의 건강 상태치고는 양호했다. 그것은 아마도 학생들에게 받는 사랑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이런 학교 또 없습니다.
이런 학생 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탁상용 카렌다에 하루하루 엑스표를 하고 있다.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의 심정이다.
퇴임일을 디데이로 하고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그럴 때는 시간이 더딘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금방 세월이 후루룩 가는 것 같다.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다. 또한 '스승의 날'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는 아예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정했다. 그날 학생들이 뭐라도 챙겨 오면 돌려줘야 하니 상호 불편했었다. '김영란법'에 대해 학생들도 알고 있다.
대신에 학생들이 마음을 전해온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도 감동적인 편지를 받은 기억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89
'올해는 조용히 지나 가나 보다'라고 생각하니 약간 섭섭했다. 내게는 마지막인데...
그런데 지난 금요일(5/12) 5교시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는데 두 명의 학생이 '짜잔'하며 스케치북을 들어 보였다. 급조한 냄새가 솔솔 났지만 중1 학생들이 교사를 생각하고 기획한 것에 감동이 됐다. 칠판에는 점심시간 내내 꾸민 멘트가 한가득이었다. 그날은 '5교시 수업'이라 내가 그런 호사를 누린 것 같다.
종례가 끝난 후에 한 학생이 교무실에 왔다.
"선생님~"
"어? 왜?"
"이거요~"
"뭘 이런 걸?"
"지난해 잘 가르쳐주셨잖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난해 가르쳤던 S가 찾아왔다. 선물을 건넨다. 지난해 가르쳤던 학생이 전하는 선물이라 돌려보내지 않고 감사하게 받았다, 나는 달달한 것을 먹지 않는데 마카롱을 챙겨 왔다. 그 마음이 스윗했다.
퇴임일을 카운트 다운하고 있으니 올해 스승의 날 이벤트가 더욱 감동적이었다.
올해도 스승의 날이 정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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