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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아들 곁에서

고소 & 달달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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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아들을 침상 목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단톡방에 지인 '부부 모임' 공지가 올라왔다고 했다. 모임 일시는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목욕시키는 일에 메인 역할이라 빠질 수 없으니 남편만 가라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난 당신을 많이 의지하나 봐. 당신도 함께 가면 좋겠어." 남편이 그 모임에 나를 대동하고 싶어 했다.

 

'의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확 꽂혔다. 그래서 갈등이 됐다. 그냥 남편 혼자 그곳에 다녀오면 좋겠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바람을 쐴 겸 나와 함께 외출을 하겠다는 남편의 맘도 이해됐다. 그러면 토요일 오후에 해오던 아들의 목욕시키는 일을 오전 시간대로 옮겨야 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아들을 목욕시킨다. 3인조가 땀범벅이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들의 침상 목욕은 머리 감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침상 옆에 있는 것들을 한쪽으로 치워야 한다. 그리고 침상 곁에 홈바의자를 두고 그 위에 샴푸 대야를 올린다. 환자를 대각선으로 눕힌 후에 발치에는 다른 의자를 대놓고 발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 머리 감기는 일부터 생쇼를 해야 한다.

 

대형 타월과 방수 시트, 목욕 수건 등을 세팅한 후에 옷 벗기는 일이 시작된다. 목욕보다 더 힘든 것이 옷을 벗기고 입히는 일이다. 환자는 강직으로 팔을 오므리기 때문에 우리는 초인적인 힘과 요령으로 옷을 벗긴다.

 

2년째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는 P쌤이 목욕 용품을 세팅하여 준비를 해둔다. 게다가 목욕이 끝난 후에 욕실 청소와 대야 씻기 등으로 뒤치다꺼리가 많다. 그러나 P쌤은 이제 환자 목욕시키는 달인이 되었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서로 알아챈다. 목욕 후에 나온 빨래는 세탁기 두 대에 나누어 돌린 후에 건조기에 말린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하려면 이 모든 일을 오전으로 옮겨서 해야 한다.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전에 아들을 돌보는 S쌤은 아들을 전동 자전거에 태워 운동시키는 일을 주로 한다. 그래서 목욕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고민 끝에 그 모임에 남편과 동행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목욕시키는 일을 오전으로 옮겨서 하기로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오전으로 옮겨서 목욕을 시키니 힘들고 어려웠다. P쌤이 하던 일을 내가 해야 하니 두 사람 몫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우당탕거리며 목욕시키는 일을 오전으로 옮겨서 무사히 끝냈다. 응가도 누이고 드레싱도 끝냈다. 토요일 오후에 할 일을 거의 해치웠다.

 

목욕을 끝냈을 때 예보대로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오후에는 더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했다.

우산을 쓰고 세컨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가지 말까?"라고 남편이 말했다. 

 

남편이 그렇게 계획을 바꾼 적은 없었다. 의외였다.

 

"그냥 참석하지 말아야겠어."

 

그 모임에 참석하려고, 아니 남편과 동행하려고 그렇게 부산을 떨며 목욕 타임을 옮기기까지 했는데...

 

"비도 오고 그러니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낫겠어"

"쉰다고요?"

그랬다. 우리는 11년째 토요일 오후에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땀이 범벅이 되고 혼비백산이 된 이후에 생각이 달라진 듯 했다. 

 

11년 전, 11월 3일 토요일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토요일 오후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쌍의 부부가 모여서 매주 토요일 오후를 함께 보냈다. '한지붕'이라는 이름으로 대공원에서 김밥, 치킨 등을 먹으며 함께 보냈다. 호수 주변을 돌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날이 '한지붕' 마지막 만남일 줄 우리는 몰랐다.   앞을 모르는 우리였다. 그날의 감상을  시로 적어두었다. 11년 전에.  

 

가을 단상

 

우리가 시어(詩語)되어

걷고 있네

가을에 젖어

 

푸르렀던 잎들

단풍으로 취해 가다가

 

우리의 길 저물 때

낙엽으로 울어댄다

 

석양의 끝에

마중 오신 주님의 팔에

저 단풍도 안기려나

 

발걸음이 가벼워지네

돌아갈 본향

그 노래 부르니

 

2012.11.3

 Incheon Grand Park

 

그런데 그 해 모임이 있은지 4일 후인 11월 7일 수요일 밤 10시 30분에 나의 아들은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그날부터 아들은 인지 없는 중증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토요일 오후는 늘 아들을 돌보는 일로 보냈다. 


 

오전으로 시간대를 옮겨서 목욕을 끝낸 후에 세컨 하우스로 돌아와 라면을 끓였다.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라면이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에 참석하려고 했던 그 모임에서 먹었을 고급 뷔페 음식보다 맛있었다. 역시 비 오는 날에는 라면이 제격이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여유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창밖에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땅을 촉촉이 적시는 비가 타는 맘도 적셔주는 듯했다. 

TV를 켰다.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채널을 멈췄다. 그냥 재미있었다. 내용이 쏙쏙 들어왔다. 그들이 웃으면 나도 웃었다. 이은지, 김구라, 유세윤, 김국진이 공동 MC를 맡고 출연 게스트는 김창옥, 박은혜, 홍진호(포코 플레이어) 빠니보틀(여행 유튜버)등이었다. 낄낄대며 소파에 기대어 그걸 다 보고 났는데도 오후 1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긴 오후였다.

어라,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남편이 조용하다 싶더니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에 자는 낮잠을 무엇에 비하랴? 리클라이너 소파에서 장시간 비행하는 사람 마냥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렸다. 단 하루도 아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해바라기처럼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가늠이 됐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무너지곤 했다. 11년 동안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아들 곁을 맴돌며 간병했던 아버지가 모든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잠을 자고 있는 그 토요일 오후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유튜브 클립 몇 편을 더 봤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했다. 별일 없이 보내는 토요일 오후 타임은 꽤 길었다.

 

"토요일 오후가 고소하고 달달하네."

 

푹잠에서 깬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내내 아들을 돌보는 간병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더구나 토요일 오후는 침상 목욕 타임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좋아져서 우리 손을 빌리지 않아도 목욕이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토요일 오후 타임을 다시 고소&달달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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