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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아들 곁에서

기묘한 win-win 아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 사고 이후는 지난한 발자국을 찍어내는 나날이었다. 생때같은 자식이 하루아침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버렸으니 말이다. 아들이 당한 사고는 단언컨대 청천벽력이었다. 그날 이후, 삶은 딴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았다. 마치 먹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예기치 않은 사고나 사건을 만나는 것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고가 닥쳤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천차만별일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현실'과 '사고'를 양발 걸치기하듯 적절하게 배분하여 받아들였다. 우리는 슬픔을 안은 채로 묵묵히 일상을 헤쳐 나갔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아들을 품고 사는 삶은 마치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묶고 걷는 것처럼 더뎠고 힘겨웠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웃으며 지내려고.. 더보기
고소 & 달달 토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에 우리는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아들을 침상 목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단톡방에 지인 '부부 모임' 공지가 올라왔다고 했다. 모임 일시는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목욕시키는 일에 메인 역할이라 빠질 수 없으니 남편만 가라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난 당신을 많이 의지하나 봐. 당신도 함께 가면 좋겠어." 남편이 그 모임에 나를 대동하고 싶어 했다. '의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확 꽂혔다. 그래서 갈등이 됐다. 그냥 남편 혼자 그곳에 다녀오면 좋겠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바람을 쐴 겸 나와 함께 외출을 하겠다는 남편의 맘도 이해됐다. 그러면 토요일 오후에 해오던 아들의 목욕시키는 일을 오전 시간대로 옮겨야 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아들을 목욕시킨다.. 더보기
찾으면 찾으리라? 도대체 이것의 이름이 뭘까? 이것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남편도 모른다. 활동보조사들도 모른다. 이것을 비상용으로 하나 더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대체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구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본 것 같으나 무엇에 쓰인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름을 알아야 검색할 수 있잖은가? 이것은 중중환자인 아들의 뱃줄에 끼워 두는 것이다. 식사가 주입될 때는 사진과 같이 해 둔다. 식사가 끝나면 뱃줄을 그 옆 좁은 구멍 쪽으로 밀어 둔다. 그러면 투여했던 식사가 역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찮아 보이지만 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클립~ 집게~ 플라스틱 클램트~ 플라스틱 클립~ 미니 클립~ 굵은 곳으로 치웠다가 좁은 곳으로 하는 클립~ 구멍 크기가 서로 다른 클립~ 과자 봉지 집게~ 저런 검.. 더보기
눈이 부시게 하늘이 푸르렀던 날이었다 '잠시 동안 하는 일종의 비행이야, 잘 넘기면 돼~'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맘이 편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제발 별일 없기를... 가을이 오면 우리 부부는 서서히 긴장된다. 투병 중인 아들이 연례행사처럼 위루관 교체 시술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한순간의 사고로 중증환자가 되었다. 11년째 목숨만 붙어있을 뿐이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도 한 풀 꺾였다. 그 전날 비가 잔뜩 내렸다. 비 개인 다음 날의 하늘이라 눈이 시릴 정도였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푸르른 날이었다. 그다음 날도 비 예보가 있었다. 병원 가는 날만 맑았다. 날씨는 일단 끝내줬다. 시술 전날 저녁 식사 이후부터 아들의 단식이 시작됐다. 아들은 환자용 경구식으로 식사를 대신해 오고 있다. 와상 환자는 식사를 최소한으로.. 더보기
<<자녀의 날>>을 홀로 정했다 '어린이날'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만에 마스크 없이 아무 데나 맘 놓고 갈 수 있으니 어린이는 물론이고 모두가 신이 났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어린이날 선물이 웬만하면 20~3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그 선물을 받은 어린이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도록 가지고 놀지? 애먼 돈만 날리고 또다시 새로운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 어린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린이날이라고 하지만 나는 막상 선물할 데도 없다. 아직 손주가 없으니... 그런데 신생아 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34살 된 아들이 있다. 11년째 병상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 녀석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아들에게는 어떤 선물도 아무 의미가 없다. 입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고 손으로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절대 무능한 상태이기 .. 더보기
15) 너의 23~30대는 어디로 가고? 뭐니 뭐니 해도 인생의 황금기는 20대~30대일 것이다. 23살, 대학 3학년 2학기에 자전거 사고로 덜컥 누워버린 아들은,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침대에 누워서 의식 없이 보내고 있다. 33살이 된 지금도 무의식 상태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생때같은 아들을 그렇게 눕혀두고도 부모인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여행도 다닌다. 신경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을 받는 중에, 더보기
14)인생 대본을 볼 수는 없잖아요? 내게는 남다른 걱정이 있다. 11년째 중증 환자로 누워있는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자기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일순간의 사고로 말미암아 준수한 청년이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끝까지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숨 쉬고 하품하는 정도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11명의 손길이 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런 아들을 남겨 두고 혹시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그렇다고 아들이 먼저 떠나는 것도 우리는 상상하기 싫다. 사고 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한 지인이 나를 위로한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있다. "저렇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가는 게 나은데... 서로 .. 더보기
13)병원 노마드 생활을 해봤습니다 동료 교사가 식중독으로 입원한 아들을 간병하기 위해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는 말을 했다.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은 할 짓이 못되네요. 이런 생활은 며칠만 해도 병날 것 같아요." "그 심정을 제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합니다." 그분이 간밤에 어떻게 보냈을지 나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 6년 동안 중증 환자인 아들과 병원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실 상황을 훤히 알 정도다. 그곳에서 지냈던 모든 일들이 또렷이 생각난다. 우리가 병원에서 보냈던 시간이 하룻밤의 꿈처럼 아련하다. 매주 금요일에 퇴근하면,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유급 휴가를 주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에는 간병인을 대신하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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