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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2월은 서로 온정을 주고받는 계절이다.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보내기 섭섭하여 맘에 담은 자그마한 선물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학교 풍습이 있다.
나도 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헤어지는 선생님들께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곤 했다.
[내가 직접 출시한 폰트로 입력한 글]
그래서 몇 번은 이별의 메시지를 폰트로 입력하여 출력한 적도 있다.
그것을 선물에 하나씩 붙였다.
내가 그렇게 하는 반면에 나는, 대체적으로 손글씨로 쓴 편지를 받았다.
그럴 때는 늘 빚진 기분이 들곤 했다.
헤어질 때 비로소 속 마음을 전하는
선생님들이 대단해 보였다.
바쁜 학년말인데도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편지를 쓰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맞춤형으로 선물을 챙겨주는 그분들의 경지를 나는 도저히 좇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2월 어느 날,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다이소'로 달려갔다.
아무리 살펴봐도 떠나는 선생님들께 전해드릴 만한 것이 없었다.
올해 내가 준비해야 할 선물은 24개였다.
그래서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와 쿠팡 앱을 열어서 검색했다. 고심 끝에 한 가지 고르긴 했다. 새벽 배송이 가능하다는 생유산균을 주문했다. 누구에게나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간단하게 메시지도 부착했다. 하지만 성의가 영 없어 보이는 선물 같았다. 무미건조한 멘트가 새삼 초라해 보였다. 영혼 없는 선물 같았다. 비루하고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
이런 것도 세상 사는 능력이라면 능력일 텐데...
그에 비하면 나를 생각하고 챙겨준 다른 선생님들의 선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선물을 받으니 낯부끄러웠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나 보다.
Jin샘이 살며시 전해준 '별'벅스 봉투 안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이 들어 있었다.
봄철 내내 마실 수 있는 금액이었다. 듬뿍 맘을 담은 듯했다.
깨알 같은 손편지와 함께...
평소에 말을 건넬 겨를도 없이 지냈던 Soon샘은 헤어 에센스를, Jeong샘은 양말 세트를 챙겨 왔다.
Hee샘에게서 따로 만나자는 메시지가 왔다. 남몰래 살며시 전해주는 선물이 묵직했다.
홍삼 엠플형 드링크 선물세트를 전해 주는 게 아닌가?
Hee샘과는 서로 바빠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지 못하며 지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숨겨둔 마음을 내보인다.
그분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 걸, 더 잘하며 살 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어떤 분은,
[가까이 지내고 싶었지만 기회가 안 돼서 아쉽네요.]
이런 멘트를 보내왔다.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이렇게 감동스러운 멘트를 받다니...
요즘은 카톡 선물로 마음 전하기를 많이 한다. 그 방법도 참 괜찮은 것 같다. 홍삼 스틱이나 티백, 그리고 프리미엄 차세트 등을 '카톡 선물'로 전송해 온 분도 있었다. 링크를 열어 나의 주소만 입력하면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다. 퇴임이라 그랬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선생님들까지 송별 선물을 보내왔다.
적어도 올 한 해는, 그분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너끈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의 속내는, 학교는 떠나지만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함께 지냈던 교무실 샘들이 고급 립밤과 핸드크림 세트를 준비했다.
눈물 찔끔 나는 쪽지와 함께.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2막을 응원한다]며...
영어과 샘들이 정성을 모아 금일봉을 준비했다.
이건 또 다른 의미의 선물이었다.
그분들의 송별 마음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옷을 살 필요 없을 테지만 크림색 패딩을 구입했다.
이건 나의 니즈가 아닌 원츠였다.
영어과 샘들을 생각하며 나의 원츠를 구입한 셈이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영어과 동료 샘들을 추억하리라.
요즘은 주야장천 그 옷만 입고 다닌다.
김영란 법(청탁금지법)이 있어도 헤어질 때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풍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도 이제 후로는, 헤어질 때 잘 떠나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럴 때 정성껏 나의 마음을 담아야겠다.
다시 만날 때도 여전히 정겨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정을 쏟으며 살고 싶어졌다.
어쩌면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이야 무엇 그리 큰 것이랴 만은 깨알같이 적은 편지를 동봉하는 그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헤어지는 당사자 그 사람을 생각하며 손 편지를 적어야겠다.
마음을 주는 것이 참 좋은 이별방식인 것 같다.
이참에 한 수 배웠다.
학교라는 곳에서 이런 것까지 배우고 떠난다.
'학교는 역시 학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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