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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동생네 카페인 '별꽃자리'에서 K샘과 N샘을 만나기로 약속해 두었다. 그분들은 일상을 접어두고 짬을 내셨다. 감사하게도...
N샘은 딱 두 번 만난 분이다. 그야말로 브런치가 맺어준 인연이다. 나의 오랜 지인이었던 K샘이 동창인 N샘에게 내가 발행한 브런치 글의 링크를 전달하셨단다. 그때부터 N샘은 나의 브런치 구독자가 되셨다.
N샘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봉직하셨고 몇 년 전에 명예 퇴임하신 분이다. 그래서 N샘이 나의 구독자인 것이 영광스럽기도 했지만 조심스럽기도 했다. 전공자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게 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샘은 2년간 발행한 나의 브런치 글을 읽으시고 늘 공감해 주셨다. 그런 구독자가 있었으므로 나는 꾸준히 글을 써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355편의 글을 발행했고 구독자수는 275명, 조회수는 53만 뷰 정도 됐다.
N샘은 퇴임하신 후에 뜻한 바가 있어 캄보디아에서 2년간 한국어 교육 봉사활동을 하셨던 분이다.
"이번 3월에 다시 캄보디아에 가 보려고요. 벌써부터 설레요."
N샘은 캄보디아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지난해 다녀오신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평소에 말이 없다는 N샘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시는 내내 그 감격을 감추지 못하셨다.
순례자~
그 말의 의미는,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또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성도라는 뜻이 있다.
그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 무던히도 들었던 찬양이 맘 속에 떠올랐다. 바로 '순례자의 길'이란 CCM이다.
https://youtu.be/TjuGlALX_cs?si=aVVRhAnjJaeapllO
그 찬양의 가사를 음미하면 그냥 맘이 아린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광야 같고 곤한 여정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광야 같은 세상에 곤한 내 여정은
가나안을 향하여 걸어가는 인생길
구름 불기둥 따라 지친 나의 영혼이
가나안을 향하는 나는 곧 순례자
순례자의 길이 비록 험할지라도
본향을 향하는 소망의 길이라네(중략)
N샘으로부터 순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뜬금없이, 지난해 읽었던 [순례 주택]이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 들렀을 때였다. 그때 나는 [불편한 편의점]이란 책의 1편과 2편을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러 갔을 때였다. 반납을 끝낸 후에 사서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 요즘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뭐예요? 혹시 추천할 만한 책 있나요?"
"이 책, 괜찮아요. 청소년 소설인데 이전의 학교에서는 이 책을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사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읽었던 책이다. 그 책 제목의 '순례'는 내가 생각했던 순례자(Pilgim)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만 주인공 수림이네가 사는 주택의 주인 이름이 순례 씨였다. 그래서 책 제목이 '순례 주택'이었다. 순례라는 단어에 꽂혀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다.
청소년 소설이었지만 주인공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 속이 후련했다. 수림이라는 학생이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과 또한 순례 씨의 찐 어른스러움이 동시에 그려지고 있었다. 순례 씨와 같은 분이 주위에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순례 씨를 닮고 싶다는 자그마한 꿈을 심어주었던 책이었다.
N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꼈던 감동이 여전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영상 링크 하나를 톡으로 전달해 주셨다. '꿈꾸는 길, 산티아고'라는 지인의 Vlog였다.
N샘이 순례길 감동 썰을 풀고 있는 동안에 남편은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남편 혼자서 차를 마시며 뷰를 즐기고 있었다. 때때로 휴대폰을 보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다. 일정 속에 짬을 내어 지인을 만나볼 경우에 동행한 배우자를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_ihFfAvxc
<꿈꾸는 길, 산티아고>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다.
영상 속의 순례자들은 피곤한 중에도 나보다 더 약한 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때로는 약한 자를 업고, 밀고, 당기며 가고 있었다. 딱 우리의 삶이었다. 혼자 갈 수 없는 인생길이 아니었던가? 영상을 보며 잠시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니 나를 업고, 밀고, 당겨주던 손길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감격의 전율이 일어났다.
또한 휠체어를 타는 분이 그 순례길에 오른 모습은 내게 큰 도전이었다. 성한 사람도 힘든 길인데...
하늘과 구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들, 무심한 듯하나 아름다운 석양, 망망한 대 초원, 그런 길을 때로는 혼자만 걷는 순간도 있게 된다. 그러나 그 하늘 아래 어디메쯤에 자신과 같은 순례자들이 자신의 속도대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믿으니 외롭거나 무섭지 않을 것이다.
밤이 오고 새벽도 온다. 무지개를 보기도 하고 강을 만나기도 한다. 인도자가 없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지? 앞에 펼쳐진 길만 따라가면 되는 것인지?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이 되기도 한다. 지치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앉아 쉬어도 그만이다. 어린이와 함께 순례길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영상을 찬찬히 보고 있으니 한 편의 다큐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N샘은 이어서 자신이 만든 영상 두 편을 톡으로 전송해 주셨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담은 N샘 내외분의 영상 기록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시간 내어 꼭 볼게요."라고 내가 감사한 맘을 전했다.
"영상을 본 후에 리뷰도 남길 게요."라고 나는 N샘께 약속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내 삶은 널 뛰듯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이제야 그 영상에 대한 리뷰를 브런치 글로 적고 있다. 시간이 그러구러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지각 리뷰다.
N샘이 보내준 첫 번째 영상이다. N샘 내외분의 Vlog다. N샘 남편분은 지난해, 1학기에 교장으로 퇴임하신 분이다. 그러나 대면하여 만나 뵌 적은 없다.
펼쳐진 산과 들판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호연지기가 온몸에 스며들 것 같았다. 'We shall overcome!'이라는 자막을 보는데 울림이 컸다. '자연이 눈부시다'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순례자 숙소라는 '알베르게'에 중간중간 들른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반갑고 전우애가 넘칠 것 같다. 곳곳에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는 풍경이 보인다. 아기도 순례의 길에 올랐다. 백지 같은 아기의 뇌 속에 순례의 길 모든 여정을 새겨질 것 같다.
비가 오는 중에도 순례의 길은 계속된다. 입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이 다 소용없을 때가 있다. 바로 그런 때였나 보다. 비가 계속 내리면 차라리 비를 맞는 편이 더 편할 것 같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인다'라는 자막이 가슴에 와닿았다.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는 부부가 보인다. 그러잖아도 어려운 분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순례객들이 동행하니 넉넉히 잘 견디며 걷고 있다.
산티아고에 입성했을 때는 몸과 맘이 모두 감격으로 젖었단다. 서로가 서로를 반겨주는 모습에서 글로벌 가족, 지구촌 마을을 연상케 한다. '순례 완주증'은 최고의 자격증인 듯하다. 아무나 지닐 수 없는 소중한 증표다. N샘 내외분은 32일간 하루에 평균 22km 정도를 걸었고 총 800Km 중에서 700km를 순례하셨다고 한다. 아,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보다. 삶 자체를 내려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을 N샘 내외분이 해내셨다. 그분들은 진정한 순례자다.
대구에서 N샘과 잠시 만난 후에 우리는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바빴다.
나는 나대로 학교 일을 마무리하고 아들의 간병 체계 정비로 정신없었다. 게다가 푸꾸옥 여행까지 다녀왔다.
한편, N샘 내외분은 캄보디아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N샘의 캄보디아에서 여정을 훑어보았다. 이것 또한 순례의 길이었다. 그분들은 순례 부자다.
https://www.facebook.com/jinsook.kim.9634/posts/pfbid02uMGbHABTs6M5oyEc11JNiJYejtUceNGq1ucUNECbKqxWCwt1yS31ERWyEpKqaLUzl
(N샘 부부가 캄보디아 한 달 지내기를 페이스북에서 살펴보았다.)
N샘을 만난 이후에 순례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
비록 수년 내에 산티아고에는 갈 수 없을지라도 '짧은 순례'를 하며 일상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싶어졌다. 그게 바로 나그네와 같은 삶이며 순례자의 자세일 것 같았다. 내가 잠시 나의 일상을 떠나 있어도 내 삶은 잘 돌아갈 것이다. 조금은 뒤죽박죽 될지라도... 내가 일상에 파묻혀 있는 동안에는 매 순간 일이 생기고 여기저기에 있는 사물들이 내 손을 잡아 끈다.
"요즘은 사물들이 어찌나 나를 찾는지..."라고 나는 투덜댄다.
눈만 뜨면 여기저기에 손을 보고 고칠 것이 생긴다. 우리 집안에서 비뚤어지거나 망가진 것은 다 내 몫이다. 오죽하면 나의 별명이 '차가이버'일까?
이런 사물의 아우성에서 벗어나려면 잠깐씩 '미니 순례길'을 떠나는 게 상책일 것 같다. 훌훌 털고 나서는 순례를 연습하며 살고 싶어졌다. N샘의 Vlog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원래, 순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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