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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의 가지각색 삶

22.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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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의 아들, 조카가 진주에서 결혼하게 된다는 청첩이 왔다. 조카가 진주에서 평생 반려자를 만나서  신접살이 집을 마련한다는 올케언니의 전화를 받고 인생 각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복선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맘 많이 설렜다. 숫기 없던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출세한 격이 되었다. 새로운 세계가 무대처럼 내 인생 앞길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1학년 담임, 김도 담임선생님은 어린 우리에게  신기한 공책을 보여주셨다. 전과목을 한 권에 다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월남 공책'이라 하셨다. 내 맘은 물결치기 시작했다. 아, 저걸 가지는 사람은 참 좋겠다고 내심 부러워했다.

 

 “이번 시험 성적이 제일 좋은 학생에게 이 공책을 상으로 줄 거예요.”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린 것은 월남 공책이라는 미끼 때문이었다. 꿈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내가 바로 그 월남 공책을 받았다. 숫기 제로였던 내는 뭔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을 곧잘 그려서 칭찬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눈에 띄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대표로 군(郡)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발표된 그림의 제목은 지금 생각해도 등에서 땀이 난.

 

'개에게 쫓기는 고양이'였다.

 

  도화지에 커다란 해를 그려 놓고 산 아래 집 몇 채 그린 후에 더 그리고 싶은 게 있다면  팔 벌리고 서있는 아이를 그려 넣는 게 고작이었던 내 그림 실력에 찬물을 끼얹는 제목이었다. 제한된 시간 동안 나는 얼음이 되고 말았다, 아예 밑그림조차 그릴 수가 없었다. 백지를 제출하고 깊은 좌절을 맛보고 말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에 글쓰기에서 조금씩 두각이 드러났다.

 

   나는 교내에 백일장만 있으면 장원을 독차지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김도 선생님이 중학교 교사로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것이다. 선생님은 나를 한 번에 알아보셨다. 백일장 작품에 대하여 칭찬을 해주시며 계속 좋은 글을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진학에 관해 얘기해주시며 참고서를 챙겨주시곤 하셨다. 학교 대표로 출전했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던, ‘이승복에게 편지 쓰기 대회'에서 수상했다. 군(郡) 대표가 되어 도(道)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대회는 진주에서 개최되었다. 대회에 참가한 몇몇 학생들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잠시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누었던 것 같다. 숫기가 꽤 많이 생긴 증거다. 미술 부문에 출전한 노회○, 피아노 연주로 출전한 김조○, 독창으로 나온 김미○ 등이 입을 모아 '진주 여고'에 대한 자랑을 했다. 그들  입시 설명에 홀딱 넘어가서 지인이라곤 없던 진주로 진학할 맘을 굳혔다. 진주는 내 고향, 가야산 자락에서는 완행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리던 먼 곳이었다. 도 선생님은 진주에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부탁하여 그 집에서 기거하며 시험 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입학 후에 그분이 자취할 방까지 구해주셨다.

 


   드라마와 같은 일이 또 있었다. 도(道) 대회에서 미주알고주알 담소를 나누며 진주여고에 진학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던 노회○는 같은 반 짝꿍이 되었다. 10개 학급 600명의 입학생 중에서 어떻게 같은 반 짝꿍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김조○는 양친이 모두 의사라는 말이 들렸다. 그는 수석으로 입학하여 입학식 때 구령대에서 상을 받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학교에서 김조○이 눈에 띄면 피했다. 나와는 사는 형편이 다르니 내심 위화감이 생겼다. 독창 부문에 출전했던 김미○도 진주여고에 온 게 아닌가?

 

     어느 날, 미술 특기생으로 진주여고에 입학했던 노회○가 희한한 제안을 해왔다. 내가 가르쳐주는 수학이나 영어가 너무 이해가 잘 된다면서 자기 집에 들어와서 입주 과외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도 선생님의 친구분이 구해준 방에서 외롭고 무서웠던 나는 짐을 챙겨서 그녀의 집으로 옮겨 들어갔다.

진주 촉석루

    내가 진주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이듬해에 여동생이 연달아 진주여고에 진학했고 오빠는 대학에, 남동생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진주에 왔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들이 한 도시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 빠듯한 형편에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신 듯하다.  나중에는 막내 여동생도 합세하여 우리 5남매 모두가 진주 살이를 했다. 내가 진주로 간 것이  마중물이 된 셈이다. 이쯤 되면 나비효과( 미세한 변화 또는 사소한 행위가 발단이 되어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라는 심리학 용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형제들보다 앞서 애굽에 가게 되고 그 이후에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간 일과 흡사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오빠와 여동생은 진주 사람과 결혼까지 했다.  얼마 전에는, 울산 요양원에서 3년 정도 지내셨던 어머니가 상태가 나빠져서 진주에 있는 여동생 곁으로 옮겨가셨다. 나로 인하여 우리 가족 모두가 진주에 살거나 연을 맺게 되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신기하다.                                                            

 

   오빠가 울산에 살고 있는데 내 조카는 진주에서 신혼살림을 출발한다는 게 내 개인적으로는 참 야릇한 기분이 든다.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저마다 각본이 있는 것일까? 누구나 생을 뒤돌아보면 이런 나비효과와도 같은 일들이 꽤 있을 것 같아서 사뭇 흥미롭게 여겨진다.

   앞도 옆도 챙겨볼 겨를 없이 살아와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인생의 해거름이 되어서야 돌아보니 그 각본의 구성이 정리되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나는 잘 짜진 본의 배우인가 보다. 그 각본의 창조주 혹은 감독은 내 인생의 나머지 여정과 결말도 훤히 알고 계실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내 발길은 진주로 향했던 것 같다.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내가 1학년 담임을 만난 것부터 출발하여 지금껏 펼쳐지는 진주와의 끈끈한 맥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조카가 결혼하는 날, 진주에 가면 감회가 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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