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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이었다. 그 전날 밤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시쳇말로 '조시'가 영 아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지러운 것은 아니나 뭔가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은 수업을 5시간이나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한두 분의 교사가 코로나 확진으로 출근을 못하는 판국에 내가 병가를 낸다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기어서라도 학교에 가고 싶었다. 내 수업은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어찌어찌 끝냈다. 그러나 그다음은 도저히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몸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장악하고 학생들을 끌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너 번 현관문 쪽으로 가보려고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던 말이더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라고?
내 생각이 나를 꼼짝 못 하게 묶고 있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친정에 여러 가지로 얽히고설킨 일이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 중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몇 가지가 터져버렸다. 그 일을 생각하며 걱정하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나를 삼켜버린 듯했다.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계에 연락을 하고 병가를 신청했다. 마음 같아서는 오후에라도 나가서 수업의 반을 감당하고 싶었지만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약을 챙겨 먹고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아들이 사고로 10년간 병상에서 의식 없이 누워있다. 그것이 나의 정신력의 100%를 다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그런 한계점에서 또 다른 걱정이 덮치니 아마도 더 이상은 감당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온종일 마음을 비우고 하늘과 산자락을 쳐다보니 마음이 한결 평안해졌다. 내 멘탈의 한계점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더니 동료 교사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반갑게 맞이해주고 학생들도 안부를 물어왔다. 멀리서도 달려와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선생님, 어제 편찮으셨다면서요? 걱정했어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올해 처음으로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는데, 잔잔한 정이 많은 학생들이다. 색종이를 접어서 머리핀을 만들어 주거나 가지고 놀던 오뚝이 인형에 그림을 그려 전해주기도 했다. 참 조잡스러운 것이지만 싫지 않았다. 활동시간에 만든 것이라고 건네주는 학생도 있다. 대부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그런 것을 전해 주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 A가 다가와서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뭔데?"
- 선물이에요
"왜?"
- 선생님 어제 편찮아서 못 나오셨잖아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고마워."
- 이거 선물이에요.
"뭔데?"
- 무드등이에요. 이거 켜고 주무세요.
"엥? 이 귀한 것을 나에게 준다고? 이것이 내게 위로가 될 것 같아?
- 네에!!!!!!!!!!!!
A가 환하게 웃으며 크게 대답했다.
도서관 이벤트 활동에서 직접 아크릴을 조각하여 만든 무드등이었다.
'어쩜, 이런 맘을 가질 수가 있을까?'
밤에 무드등을 켜보니 참 분위기가 좋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무드 있는 위로가 참 좋았다. 마음을 다 잡고 지금까지 잘 걸어왔던 것처럼 잘 살아야겠다. 다른 이들에게 심려를 끼치지 말아야지. 더군다나 천사 같은 학생들에게.
나의 멘탈을 잘 다스려야지. 순간순간 힐링하며 살아야지. 가을 앓이 선물을 받고 보니 무드 있는 위로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선물 받은 무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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