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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떠나며

꽃잔치, 'Non-모바일' 초대장을 받다- 이제부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인천대공원'에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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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하니 좋은 점이 꽤 있다. 이제 출근하지 않으니 평일에 나들이하는 일이 참 용이해졌다. 관공서 방문도 그렇고 은행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여행을 가더라도 평일에는 혼잡하지 않아서 좋다. 교사는 덥거나 추울 때 대체적으로 여행을 가야 했다. 방학 이외에는 시간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12년 전, <한 지붕> 마지막 모임 후에 적은 단상]

 

12년 전에, 가깝게 지냈던 세 쌍의 부부가 <한지붕>이라는 모임 만들었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 인천대공원에서 서로 얼굴도 보고  산책하는 모임이었다. 인천대공원 원두막에서 김밥과 닭튀김을 먹은 후에 호수 둘레를 거닐었다. 그 정도의 산보였으나 도란도란 정겨운 만남이었다.

 

2012년 11월 첫째 토요일에도 <한지붕> 정기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이 있은지 3일 후에 아들이 절체절명의 사고를 당했다. 사람의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맞다. 그 이후로 <한지붕> 모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 <한지붕> 마지막 모임 날, 단상을 적은 메모가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다는데, 우리는 12년을  하루처럼 아들 곁에서 전전긍긍하며 지내오고 있다. <한지붕>이 와해된 지 10년이 넘었다. 모든 게 많이 변했다.

 


 

퇴임을 하자마자 그 모임을 부활하고 싶었다. 이제 나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은 병원을 떠나 집으로 옮겨 왔고, 24시간 활동보호 대상자가 되어 시간을 내려면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들은 나아진 게 없으나 여건은 꽤 많이 좋아진 셈이다.

 

그래서 3월 마지막 화요일에 인천대공원에서 만남을 가졌다. 나의 퇴임에 맞추어 <한지붕> 모임이 부활됐다. 중증 환자 아들을 돌보는 중이라 매일 할 일은 있지만 그나마 화요일에 시간 내기가 편했다. 그것도 온종일 시간을 할애하기는 곤란하고 오후에 만나 좀 놀다가 저녁 식사를 하는 정도의 모임 할 수 있다.

 

인천대공원은 여전했다. 오랜만에 들른 인천대공원은, 긴 겨울의 터널을 막 벗어 나온 듯했다. 쾌청한 하늘이 상큼했다.

[아직은 꽃몽오리가 벌어지지 않은 모습 / 수목원 입구]
[<한지붕>멤버가 준비해 온 간이 의자/ 진달래만 겨우 피어 있던 3월 마지막 화요일 오후 풍경]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해도 어느 곳이나 명장면이었다. 인천대공원은 4계절 내내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인천대공원을  때마다 뉴욕 근처, 필라델피아에 있는 '롱 우드 가든'이 생각난다. 인천에 롱 우드 가든*을 닮은 공원이 있어서 참 좋다. 인천대공원은, 꽃이 피는 봄에는 꽃대궐이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이 시원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왁자지껄할 정도다. 겨울에 대공원 호숫가에 눈이 내리면 그것도 장관이다. 그래서 인천대공원은 아무 때나 가도 식상하지 않다. '무장애길'이라는 데크길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인천대공원 '인천 2호선' 전철이 지나간다. 아예 '인천대공원역'이 있다. 역에서 내리면 그냥 인천대공원과 연결된다. 접근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인천 2호선은 기관사 없이 무인으로 운행된다. 4량 정도 되는 작은 전철이다. 하여간 평일에 지하철을 이용하면 그저 그만이다. 그래서 인천대공원으로 가는 나들이는 매일 간다 해도 식상하지 않다.

 

그런데 3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는 진달래와 개나리만 어있고 벚꽃은 벙글어질 낌새도 없었다. 오죽하면 어떤 지자체에서는, 죽을죄를 졌습니다,라고 했단다. 축제 타이밍이 개화와 맞지 않아 사과를 했다는 기사였다.

 

"여보, 우리 <한지붕>의 정기 모임이 있을 4월 말까지 기다리지 말고 4월 중순 어느 화요일에 둘이서 한 번 더 가요."

"그러지 뭐, 이제 당신은 시간 부자니까."

"그러면 우리 날을 정해놓지 말고 저기 저 벚꽃이 면 가기로 해요."

 

세컨 하우스 정원에 벚꽃 나무가 댓 그루 있다. 그런데 3월 마지막 화요일 <한지붕> 모임을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우리 아파트 정원의 그 벚꽃이 튀밥, 뻥튀기처럼 팡팡 꽃몽오리가 다 터다.

 

"어허, 저거 봐요. 꽃잔치 초대장이 왔어요."

"그러네, 하루 이틀 사이에 저렇게 꽃이 만발할 수가 있네."

"지난해 생각 안 나요? 꽃이 활짝 핀 날 비가 억수로 와서 꽃이 다 떨어졌던 거?"

"오늘은 비 예보가 있고, 내일은 OO이 침상 목욕이라 안 되고..."

 

남편은 꽃구경 갈 궁리 중이었다.

 

"오늘 혹시 비가 오면 꽃 다 떨어질 텐데..." 남편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올해 꽃절정의 시기를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안달이 났다.

 

"1년에 한 번 보는 꽃잔치를 놓치면 안 되는데... 저렇게 'Non-모바일 초대장'도 떡하니 당도했는데.."

"그러게. 다음 주 화요일에는 꽃이 다 질 것 같은데..."

"시간을 놓쳐 꽃잔치를 못 보면 그걸 뭐라 하죠?"

"만·시·지·탄이라 하지."

 

사자성어 달인다운 말이다.

 

"우리 그냥 지금 떠나요. 비 예보는 있으나  현재 비 오 않잖아요."

"그래요. 봄 잠바를 입고 가야겠죠?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니..."

 

우리는 부랴부랴 꽃잔치에 참여하려고 인천대공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생각했던 만큼 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예보되었던 비는 결국 오지 않았다. 다만 잔뜩 흐려 눈이 부시지 않아 봄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일부 꽃만 만개했다./ 3월 말과 비교 하면 일주일 사이에 꽃이 꽤 피었지만 아직은 만개하진 않았다.]

 

어쩌면 <한지붕> 모임이 있을 4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도 꽃을 볼 수 있을 듯했다. 꽃이 지면 또 어떠랴? 잎을 봐도 된다. 꽃 진 자리에 뾰족뾰족 나온 연녹 잎사귀들이 꽃 못지않게 앙증스러울 것이다.

 

[데크길을 산책하면 메타세콰이어와 편백 숲을 볼 수 있다./ 팻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평일에도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참 좋다. 학교 문이 닫히니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쉽게 열 수 있었다.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는 나 혼자라도 인천대공원에 들러 계절을 만끽하며 지낼 예정이다.

 

"저 노실 분은 그때 인천대공원에 오시면 됩니다."

 


 

꽃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내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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