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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근무할 때,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점심 식단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다. 어떤 학급에는 교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식단을 띄워놓기도 한다. 4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우르르 게시판 쪽으로 달려 나오곤 했다. 다시 한번 게시판에 있는 그날의 식단을 확인하려고...
나는 학교에서 하루에 한 번, 남편 생각이 나곤 했다. 제대로 된 점심을 나만 먹는 것이 미안했다. 급식이 웬만한 식당 메뉴를 뺨칠 정도로 좋았다. 이 학교에서 5년 정도는 점심 식사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저는 하루에 한 번은 남편 생각을 해요. 점심 식사할 때마다..."
"저는 급식 먹으러 학교에 와요."
식판에 맛있는 반찬을 챙겨 담으며 동료와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이 학교의 급식이 맛있어서 신입생들이 지원을 많이 한대요."
"그것도 그렇지만, 매점이 있어서 지원을 많이 한대요."
우리 학교는 인근 다른 학교에 비해 과대 학교, 과밀 학급이었다. 인근에는 학년 당 4~6개의 학급이다. 학급 당 인원은 20명 미만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경우, 한 학년은 12개 학급, 학급 재적은 30명을 넘곤 했다.
그런데 신입생의 지원이 몰리는 이유가 맛있는 급식이나 매점이 있어서 그랬다는 말은 '카더라' 통신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에 학교 매점의 문을 닫았다. 그래도 신입생 지원자 수는 여전히 차고 넘쳤다. 맛있는 급식 때문도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그렇게 맛있던 학교 급식이 2년 전부터는 영 아니었다. 냉동식품으로 만든 요리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간이 맞지 않을뿐더러 반찬 색깔도 고려하지 않은 급식 나왔다. 반찬 색깔이 죄다 붉은 색깔일 때도 있었다. 식판을 들면서 흘깃 그날의 메뉴를 훑어보고 "우와~"라며 감탄하던 소리도 사라졌다.
"아무래도 몸이 이상한 것 같아요."
"급식이 너무 기름져요."
"자꾸 몸무게가 늘어요."
"학생들에게 맞춘 식단을 짜다 보니 성인인 우리들에게는 열량이 높은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급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쯤 영양사가 바뀌었다. 그래서 식단이 확 바뀐 것 같았다. 무상 급식이니 예산이 부족하여 그런 것은 아닐 것이었다. 주방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느 순간부터 학교 급식을 먹고 나면 속이 편하지 않았다. 급식실에 들어서서 식판을 들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점점 반찬의 간이 맞지 않았다. 지나치게 맵거나 느끼하기도 했다. 국 종류는 건더기 없이 국물만 잔뜩 있었다.
교사 중 한두 분이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와서 먹기 시작했다. 급식을 먹지 않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났다.
'차려주는 밥상이 제일 맛있는 법인데...'
절친한 동료들이 급식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나는 학교 급식을 계속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메뉴가 나왔다. 사골 곰탕이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고기가 선홍색이었다. 먹고 싶은 맘이 싹 가셨다. 그날 점심은 굶었다.
'딱 여기까지네.'
나는 학교 급식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미급식 확인서'를 작성하여 행정실에 제출하면 급식비가 인출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냄새나지 않으면서도 끼니가 될 수 있는 먹거리를 챙겨 갔다. 삶은 계란, 절편, 과일, 야채 스틱 등을 싸 갔다. 교무실에서 틈나는 대로 먹고 점심을 따로 먹지 않았다. 챙겨가는 것이 좀 귀찮아도 학교 급식을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겨울 방학이 되기 두 달쯤 전부터 학교 급식을 끊었다.
그때부터 점점 집밥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퇴임교사라 나름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그래서 매주 한 번씩은 밑반찬을 만들고 있다. 창의적인 요리를 하면 신이 났다. 요리하는 이야기를 브런치 글로 발행했다. 살펴보니, 내가 요리했던 에피소드를 브런치 글로 발행한 것이 꽤 많았다.
지난주는, 두부 부침, 무생채, 돼지고기/콩나물/두부/묵은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3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했다. 평소에는 내 방식대로 했던 요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 가정은 집밥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레시피를 꼼꼼하게 보며 요리했다.
두부 부침은 물기를 빼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리고 5~7분 동안 팬에 굽고 또 뒤집어서 그 시간만큼 은근히 구우면 맛있는 두부 부침이 된다.
두부를 부칠 동안 무생채도 만들었다. 무를 소금에 절이지 않고 그대로 무치는 방식이었다. 이 요리 방법으로 요리하면 무에서 생기는 물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생채를 먼저 고춧가루에 미리 잘 버무려 두는 것이 요령이었다. 무 채 썰기는 만능 채칼로 하니 채가 가늘고 좋았다. 밑반찬으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반찬이 어중간할 때는 무생채를 넣고 비빔밥을 해 먹어도 된다. 때로는 김치 대용이 될 수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채지'라고 한다. 채김치라는 뜻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김치찌개도 끓였다. '돼지고기/콩나물/두부/묵은 김치찌개'를 제대로 끓여 보기로 했다. 먼저 돼지고기에 밑간을 잘하고 볶는 것이 중요했다. 돼지고기에 된장, 고춧가루, 후추, 청주,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잘 버무린 후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미리 볶았다. 이어서 콩나물과 묵은 김치를 넣고 뭉근히 끓인 후에 마지막 단계에서 두부를 넣고 끓였다. 잡내도 없고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이 찌개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나의 퇴임과 더불어 우리 가정에는 이제 집밥의 시대가 찾아왔다. 나는 뮤지컬, <노트르 담 드 파리>에서 들었던 '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왔어.'라는 노래를 혼자서 흥얼거렸다. "집밥의 시대가 찾아왔어~ ♬♬"라고 개사하여 불렀다.
퇴임하니, 주방으로 제일 먼저 가게 됐다.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PS: 그동안 발행했던 요리에 관련된 브런치 글을 올려본다.
https://brunch.co.kr/@mrschas/394
1. (감태지): 아들과 있었던 추억이 그리울 때는 감태지를 담가 먹는다.
https://brunch.co.kr/@mrschas/422
2. (당근 라페) 77,000 조회수: 요즘 핫한 당근 라페, 조리 방법이 참 쉽다.
https://brunch.co.kr/@mrschas/426
3. (알배추): 치솟는 야채 값에 비해 알배추 값이 착했다.
https://brunch.co.kr/@mrschas/430
4. (콩나물 요리): 콩나물 요리를 부침개로 변신해 봤다.
https://brunch.co.kr/@mrschas/435
5. (황태전): 동태전 말고 황태전을 부쳐 보았다.
https://brunch.co.kr/@mrschas/436
6. (배 장기 보관법): 배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448
7. (정월 대보름 찰밥):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하게 된 에피소드
https://brunch.co.kr/@mrschas/458
8. (쪽파 김치) 79,000 조회수: 물가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무심코 사 들고 왔던 깐 쪽파 값이 생각했던 것보다 열 배나 더 비쌌다.
https://brunch.co.kr/@mrschas/470
9. (수제비): 수제비에 얽힌 에피소드
https://brunch.co.kr/@mrschas/474
10. (20가지 모둠 쌈): 인터넷으로 20가지 모둠쌈을 사놓고 먹으면 경제적이다.
https://brunch.co.kr/@mrschas/477
11. (분홍 소시지 전): 추억의 분홍 소시지 전을 부쳤다.
https://brunch.co.kr/@mrschas/482
12. (꽈리고추 멸치 볶음): 레시피대로 요리한 '꽈리고추 멸치 볶음'이 너무 맛있어서 한 끼에 홀라당 다 먹어치웠다.
https://brunch.co.kr/@mrschas/350
13. (최애 반찬) 50,000 조회수: 지인에게 청양고추를 받았다. 처치 곤란인 청양고추로 된장 쌈장을 만들었던 에피소드.
https://brunch.co.kr/@mrschas/261
14. (깐 쪽파 양념장): 깐 쪽파를 샀는데 마트의 매대 위에 두고 와서 도로 찾은 이야기.
https://brunch.co.kr/@mrschas/300
15. (이 요리의 이름은 모릅니다.) : 이름 모르는 요리, 장조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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