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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나의 원픽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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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스포츠 데이'나 '학교축제'에서 보면 대견스럽다. 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샘, 샘, 그거 아세요?"

"뭘?"

"쟤가 피아노를 친대요. 축제에."

학생들이 Yu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Yu가 이번 축제에 피아노 독주를 한대요."

"그것도 오프닝 무대래요."

"우리 Yu, 멋지죠?"

Yu의 학급 친구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경사가 났다는 표정들이었다. 슬쩍 Yu을 보니 그냥 씩 웃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스포츠 데이'나 '학교축제'에서 보면 대견스럽다. 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그 반에는 유독 재능꾼들이 많다.

 

영어 에세이를 우리말 쓰듯 쓱싹 잘 쓰는 A.

그림을 전문 화가처럼 그리는 B.

발에 공을 실로 묶고 하듯 축구를 잘하는 C.

"조용히 해!" 한마디만 하면 교실이 조용해지는 카리스마 짱인 반장 D.

타이포셔너리 창안에 천재인 E.

재잘거리는 애교쟁이 F도 그 반 학생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비하면 Yu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동안 Yu는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기 순번이 되면 차분히 발표를 하던 Yu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Yu가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인 줄 몰랐다.

 

 

 

우리 학교 축제 오프닝 무대는 관현악 연주였다. 70여 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관현악 연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학년 초에 오디션으로 관현악단 단원을 뽑았다. 그때부터 각 파트별로 다른 교실에 모여 전문 레슨 강사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시작한다. 축제 날 단 한 번의 연주를 위해 매일 연습을 했다.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제대로 된 하모니를 완성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방과 후에는 밴드부와 관현악단 연습 소리가 삐익, 삑 거리며 불협화음으로 들리곤 했다. 대망의 축제 날에 준비했던 그 연주의 막이 오르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덮친 때부터 관현악 연주는 더 이상 오프닝 무대를 꾸밀 수 없었다. 아예 축제 자체가 없어졌다. 일상의 멈춤이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축제를 대면으로 전환해오고 있었다.

 

코로나가 아직 종식되지 않아 축제는 열렸으나 관현악 연주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올해는 Yu의 피아노 독주로 축제의 서막을 열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어 오디션 경쟁률도 꽤 치열하다.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경쟁을 뚫고 탑원이 되어 독주를 하게 된 Yu가 대단해 보였다. 그것도 1학년 남학생이 선발되었다는 점에서 Yu를 다시 보게 됐다.

 

두둥,  MC들의 화려한 시작 멘트가 울리자 Yu가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차분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마음을 모아 응원하며 환호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축제 관람 점수도 최고점이다. 한 사람도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를 잘 지킨다. 열광하되 경청하고 소리치되 자리는 이탈하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 Yu의 연주를 감상하는 선배, 동급생들의 모습도 Yu만큼이나 멋졌다. 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는, 수준 높은 학생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미친 듯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던 Yu의 손가락, 그 순간 Yu는 나의 원픽이었다.

찢었다 무대를. 연주곡은 '캐리비언의 해적' OST였단다.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야말로 축제로다!"

 

 

멋진 반주를 마치고 Yu가 총총 걸어서 무대를 내려와 뒤쪽으로 왔다. 내 앞을 지나갔다. 순간, 연예인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래, 넌 오늘부터 나의 연예인이야.'

 

축제 날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던 추억을 Yu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Yu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Yu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을지 상상해 봤다. 그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Yu 너는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피아노를 성실하게 연습해 온 걸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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