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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나의 달의 아이를 채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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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스포 있음]

 

『달의 아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브런치 작가, '초이스'님(최윤석, KBS 드라마 PD)이 자신의 책 출간을 알리는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하여 그 사실을 알게 됐다.

 

https://brunch.co.kr/@williams8201/120

 

책의 표지에, "서글픈 동화를 닮은 재난을 시작으로 현실적인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이어간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나는 SF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재난물은 더욱 싫다. 그래서 그 책, '달의 아이'는 내 취향이 아닐 듯했다.

 

 

 

[SF 소설 'The Best New Thing '의 저자 소개 지문]

그런데 내가 가르치는 2학년 영어책 본문이 SF소설로 되어 있는 단원이 있다.

그 단원을 수업하려면 SF 시리즈 하나 정도는 접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학교 도서관 신간 구입 희망 신청서를 낼 때,『달의 아이』를 신청했다.

 

 

 

어느 날 도서관 쪽에 갈 일이 있었다. 신간이 입고되었을 것 같았다. 유리문을 통해 도서관 안을 들여다보니 신간 코너에 책들이 빼곡했다. 신간이 어제오늘 사이에 들어온 듯했다.

 

신간이 들어오면 입고 처리한 후에 도난 방지 바코드를 부착하는 작업을 한다. 다음에 책 옆 학교 소관임을 표시하는 도장을 는다'도서 시스템'에 등록 처 완료되면 그때부터 신간 도서 대출, 반납이 가능해진다. (학교 도서관에 사서가 미발령 상태였던 3년 동안 내가 도서관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안다면 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 사서샘에게 물어봤다.

"혹시 '달의 아이'라는 책이 이번에 들어왔을까요?"

"확인 볼게요."

도서 시스템을 체크해 본 사서샘이,

"그런데 그거 대출됐네요."라고 말했다.

 

"헉, 그 책이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나는 내심 황당했다.

 

'이제 막 출간 된 책인데 누가 알고 채갔단 말인가?'

 

"선생님, 그 책의 대출자가 누군지 확인 좀 해주실래요?"

"네에, Do라는 학생이네요."

"그렇군요. 그 책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사서샘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신간이 막 들어온 날, 어떤 학생이 '달의 아이'라는 책이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학생이 신청한 책인 줄 알았어요. 때마침 도서 시스템  정리가 끝났을 때라 바로 대출해 줬어요."

"그래요? 참 신기하네요."

 

무엇인가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Do는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허탈한 맘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브런치 알림이 띵동 하며 울렸다. 브친 유미래 작가님의 새 글이 발행됐다고...

 

유미래 작가님의 글을 보니 '달의 아이'가 어떤 책인지 알 것 같았다. 스포가 다소 있긴 했으나 내용이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다.  

 

신간구입 희망 신청을 할 때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도 함께 신청했었다. 그 책은 무난히  대출할 수 있었다. '달의 아이'를 기다리며 대신에 그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브친, '포레스임'이 글쓰기 교본처럼 읽고 있다고 소개해주셨다.

 

https://brunch.co.kr/@ce3179a175d043c/474

                            ▲ 유미래 작가님의 '달의 아이'에 대한 서평이 실린 브런치 글

 

 

'달의 아이'를 대출해 간 Do 내가 가르고 있는 학생이다. 학년초 영어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후드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는 속된 말로 '날라리'같았다. 그러나 볼수록 괜찮은 학생이었다. 그는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수업 태도가 좋았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나보다 한 발 앞서 대출해 간 '달의 아이'에 대해 물어보려고 Do를 만났다.

 

"네가 '달의 아이'라는 책 대출해 갔던데? 그 책은 내가 구입 희망 신청처로 제출한 책인데... 하여간 Do, 너, 아주 멋진데..."

 

일단 Do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네네, 제가 빌렸어요.후드티 속에서 약간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Do가 말했다.

Do는 후드티 모자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여학생처럼 단발이다. 

그런 Do가  책을 가방에서 꺼냈다.

 

"지금 한창 읽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 중학생들이 즐겨 읽을 만한 책인가 보구나. 근데 너는 그 책을 어떻게 알게 됐어? 따끈따끈한 신간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아, 그게, 제가 어디서 그 책을 소개하는 광고를 봤어. 그래서 호기심이 막 생겼어요. 꼭 한번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그랬구나. 멋지다! Do ㅎㅎ"

"감사합니다."

"그 책 다 읽은 후에 도서관에 반납하지 말고 내게 곧바로 줄래? 내가 그 책을 도서관에 반납 처리한 후에 내 이름으로 다시 대출할게."

"네에, 알겠습니다."

"아참, 다 고 나면 꼭 나한테 한 줄 정도의 독후감을 말해주면 좋겠어. 나도 그 책을 읽은 후에 서평을 말할게."

"좋아요."

우린 다시 한번 하이파이브를 했다. '달의 아이'라는 책 때문에 Do와 훅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중1 학생이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하여  책을 책가방 속에 챙겨 다니면서 틈틈이 읽는다는 점이 기특했다. 

Do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의외였다.

 

 

Do는 질문이 많은 학생이다. 온통 모든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Do는 호기심 천국에 살고 있는 듯하다.

 

구찌냐? 샤넬이냐? 묻기도 하고,

썹 시술을 하셨네요.

파마를 했네요.

염색 빛깔이 잘 어울려요.

그 스카프 샘이랑 매치가 잘 되네요.

요즘 핫한 와이드 팬츠 입으셨네요.

라고 한 마디씩 말한다. Do는 눈썰미가 야무지다. 작은 변화도 눈치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샘, 유남생이란 뜻이 뭐예요?"

<You namsayin (유남생)? 영어 'you know what I'm saying? '을  빨리 발음한 것.>

 

"양키는 무슨 뜻이에요?"

<양키(영어: Yankee)는 보통 미국 시민 가운데 미국 북동부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

 

"에구, 궁금한 것도  많네. 그런 건 '지식인'한테 묻든지 'ChatGPT'한테 물어봐"

"에이, 그런 거 다 못 믿어요. 샘한테 물어보는 게 최고예요." Do가 활짝 웃으며 엄지척을 한다. 교사에 대하여 무한 신뢰하는 Do때문에 부담감이 확 밀려오긴 했다.

 

그런 Do는 레강스한 패션 디자이너가 될 것 같다.

 

 

Do는 후드티 모자를 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시간에는 물론이거 학급 대항 축구시합을 할 때도 그 모자는 줄기차게 쓰고 있었다. 찌는 듯한 한여름에도 그 후드티 모자는 꼭 쓴다.

 

"아무래도 귀 모양이 좀 이상한 가 봐요. 본인이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듯해요."

 

담임샘은 암묵적으로 Do가 실내에서 모자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했다.

비록 후드티 모자를 쓰고 생활하지만 Do는 았다.

자신의 핸디캡을 개념치 않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 자존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마침내 Do에게 전달받은 '달의 아이'를 읽고 있다. 일단 책을 읽다가 멈출 수 없었다. SF소설에 관한 나의 트라우마를 깨뜨린 책이다. 계속 궁금증이 더해졌다. 책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 2035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날, Do에게 물었다. 

 

"그 책 어땠어?"

"한 마디로 재미있어요."

그게 Do의 한 줄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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