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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아들 곁에서

6) 아들은 '말썽쟁이' 중학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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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배정된 날부터 아들과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아들은 학교의 교칙에 따라 그렇게 짧게는 머리를 깎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왜? 내 머리 길이를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고요?

 

아들은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내세웠다.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칙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기가 막혔다. 모두가 말끔하게 이발을 하고 입학식에 올 텐데... 아들은 자기 헤어 스타일을 그대로 한 채로 중학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주 한 번씩 있는 용의 검사에서 아들은 두발 길이 때문에 늘 지적받았다.

담임선생님은 물론 학년 부장님도 아들을 지도하느라 진땀을 빼셨다. 말을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춘기 중학생을 이길 자가 어디 있으랴? 우리도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아들과 말이 통하지 않자 담임선생님은 아들의 두발 문제를 교장 선생님께 넘기셨다.

어느 날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전화하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입니다. 

-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발을 하자고 해도 애가 말을 듣지 않아요.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남편은 전화를 받자마자 아들이 이발을 하지 않고 버텨서 연락이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남편은 죄인 같은 심정이었다.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

 

아들이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학급 배정을 확인하려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엄마, 졸업생이 기부하고 간 교복을 500원이면 살 수 있대.

 

그때는 무상 교복 시절이 아니었다. 교복 물려 입기에 대한  안내를 아들이 솔깃하게 들었던 것 같다. 아들에게 이끌려서 학교에 갔다. 졸업생이 남겨두고 간 헌 교복 중에서 아들에게 딱 맞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아들은 그때 아직 초등학생 몸매였다. 그중에서 상태가 양호하고 크기가 적당한 것을 골랐다.  500원을 기부하고 교복 한 벌을 챙겨 왔다.

 

나는 사흘 밤낮 동안 헌 교복을 자르고 꿰맸다. 아들에게 맞도록 교복을 수선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후회스럽다. 아들이 그렇게 하자고 해도 내가 그건 아니라고 말렸어야 했다. 왜 그렇게 못 했는지 자괴감이 든다. 새 교복을 맞춰 주고 급할 때 비상용으로 입을 옷이면 몰라도...  아들이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가장 좋은 원단으로 된 교복을 마련해서 입혀 주고 싶다.

 

요즘도 중학교 신입생들이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옷을 깔끔하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들에게 새 교복을 입히지 못했던 것이 맘에 걸린다.  2학년 때라도 새 교복을 사 입힐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맹추 같은 엄마가 어디 있을까? 이제 와서 그 누구를 탓하겠는가?

 

중고품 '아디다스 져지'를 12만 원에 샀다.

 

어느 날 아들이 서울에 가겠다고 했다.

 

왜? 혼자서? 위험하게?

- 그거 있잖아?

 

뭔데?

- '중고품 아디다스 져지'를 12만 원에 판대.

 

그게 뭔데?

- 엄마는 설명해도 몰라. 그게 한정판이라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아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흥정을 하고 그걸 구하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중학생에게 12만 원은 큰돈이었다. 자신의 용돈을 몽땅 털었던 것 같다. 

 

너 혼자만 보낼 수는 없어.  사람이 사기꾼일 수도 있어. 납치범일 수도 있고...

 

나는 아들을 따라나섰다. 아들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엄마는 절대 나서지 마. 멀리서 보고만 있어.

- 알았어.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우리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멀치감치 서서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은 꼬깃꼬깃 접은 12만 원을 그 사람에게 주고 그 값으로 '아디다스 져지 한정판'을 받았다. 비닐봉지에 담긴 그 옷은 간 밤에 급하게 빨았는지 물기가 남아있었다. 짝퉁인지 한정판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 눈에는 거저 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같이 후줄근해 보였다.

 

<전원일기>에 나오는 응삼이가 입던 츄리닝이구만.

 

나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뾰로통하여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창피하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니가 더 창피하다.'라고 속으로 투덜댔다.

 

걸핏하면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은 친구들과 체험 학습을 가거나 야외에 나가면 기획사의 명함을 몇 장씩 들고 왔다.

 

친구들도 다 받았지?

- 아니, 아저씨가 나만 주던데?

 

왜 그러지?

- 전화 달래. 

 

왜 너만 이걸 준대?

- 엄마는 길거리 캐스팅도 몰라. 이 엉아가 길에 나서기만 하면 캐스팅을 당한다니까...

 

아들은 기획사 직원으로부터 명함을 받곤 하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는 꼭 연락 달라고 아저씨가 신신당부를 했어요.

- 그거 다 장사 속이야. 기획사가 아니고 학원이야. 순진한 너네들을 그 학원에 등록시키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는 아는 척 좀 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내 친구들도 명함을 받아야죠.

- 니가 제일 잘 넘어올 것 같으니 그랬겠지.

 

아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 기획사에 연락을 해봤다. 그리고 방문 약속을 잡았다.

 

이렇게 명함을 주는 기준이 뭐예요? 어떤 학생에게 이걸 주시나요?

 

나는 아들과 함께 기획사에 도착하여 다짜고짜 물었다.

 

아, 저희는 일단 학생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 살짝 미행을 합니다. 그 무리에서 누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봅니다. 그리고 멀리서 카메라로 화면빨을 체크해보기도 합니다.

- 우리 아이는 숫기도 없고 그런데 재능도 없어요.

그건 어머님이 보는 모습이고요. 친구들과 있을 때는 전혀 딴 판입니다. 아드님은 다분히 끼가 있어요.

 

기획사에서 한 달 수강료며 커리큘럼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기획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나중에 기회는 많을 거야.

-...

아들은 내 말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기획사가 하자는 대로 했더라면 지금쯤 아들은 연예인이 되어 있었으려나?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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