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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아들 곁에서

7) 아들이 '엄석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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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의 아들은 단 하루도 조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들이 공부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살았다. 주로 총쏘는 온라인 게임을 많이 했다. 녀석이 그 게임을 하도 많이하여 컴퓨터 화면에도 핏방울이 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 게임을 하던 아들이 갑자기 장롱을 발로 차대기 시작했다. 아들은 게임이 맘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이 폭발하여 퍼드덕댔다.

 

저 놈이 할머니 오셨다고 싫은 내색을 하는구만. 자식 하나 잘 낳아 놨네.

 

시어머니는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셨다. 손주가 당신을 괄시하는 듯한 것도 서러우셨지만 시어머니가 그토록 아끼는 아들이 자식 녀석 때문에 맘 고생이  심할 것을 생각하셨던 것이다. 

 

아들은 밤이 늦도록 게임을 하다가 지쳐서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에 곯아 떨어진 아들을 깨우는 것이 고역이었다. 잠을 제대로 깨지 않은 아들은 아침을 먹을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늘상 학교에 지각을 해댔다. 담임샘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머리는 자르지 않고 지각은 밥 먹듯이 하니 밉상 중에 밉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공부도 안 하니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을 것이다.

 

하루는 자정이 넘어도 아들이 귀가하지 않았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불량배들한테 끌려간 것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못해도 되고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괜찮으니 무사히 집에만 돌아오기를 바랐다. 우리 부부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아들을 찾아 나섰다. 전철 역사에도 가보고 아들이 갈 만한 곳은 다 찾아 봤다. 그 때만 해도 휴대폰이 없을 때였다. 아무래도 큰 사단이 났을 것 같았다. 결국 아들을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려고 수화기를 드는 순간에 아들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남편은 이성을 잃었다. 아들을 보자마자 뺨을 한 대 때렸다.

 

찰싹~

야, 임마,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잖아?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거야?

 

화난 남편의 손목을 아들이 휘어잡았다.

 

놀다 보면 늦을 수도 있죠. 

 

아들은 오히려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아들을 찾느라 헤매고 다녔는지 걔는 몰랐을 것이다.

 

현실은 어쩌면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어느 날 남편이 아들에게 말했다.

 

야, 넌 허벅지가 왜 그러냐? 멍이 시퍼렇게 들었네.

- 이거요? 별 것 아니예요. 신경쓰지 마세요.

 

며칠 후에 아들의 얼굴에도 멍이 들어 있었다. 그 때도 아들은 슬며시 자리를 떴다. 팔에도  자국이 보였다.

 

아빠, 그거 몰라요? 조금만 부딪쳐도 멍이 드는 피부가 있다잖아요? 제가 하얀 피부라 멍이 쉽게 드는 거예요.

 

우리는 아들의 말만 믿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던 어느 날, 담임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학교에 좀 오라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싸움을 한 모양이었다. 부모 말을 제대로 안 듣고 학교 생활에 불성실하더니 이제는 친구들과 싸움까지 하는가 싶어서 잔뜩 걱정이 됐다. 우리는 사색이 되어 학교에 도착했다.

 

급식을 지도를 하다가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일이 간단하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한 녀석이 ㅇㅇ이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친구들과 싸운 것이 아니라 친구한테 당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담임샘을 통하여 들었던 이야기는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아들을 괴롭히던 녀석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그 엄석대와 같은 녀석이 아들의 급우였다.

 

아들은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면서 학습 이해도가 좋아져서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 초등학교 시절의 열등생은 아니었다. 학습태도에 비하여 성적이 잘 나오니 어떤 선생님들은,

 

너 고액 과외 받지? 분명해. 공부를 안하는 데 이런 성적이 나올 수가 없지.

 

아들의 성적을 보고 의아해 하셨단다. 

 

그래서 엄석대도 아들이 공부를 좀 한다고 알고 있었다. 엄석대는 아들에게 시험을 대신 보아 달라고 했다. 방식은 이랬다. 아들은 시험지에 엄석대라고 적고, 엄석대는 시험지에 아들의 이름을 적어서 냈다고 한다. 엄석대는 각 과목에 엄석대라고 적어서 답안지를 제출하기로 짜둔 정예 멤버가 있었다고 한다. 엄석대의 성적은 다양한 학생들이 부조해준 점수였다.

 

아들은 엄석대에게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았단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알리면 어쩌겠다고 엄포도 놓았다고 한다. 자초 지종을 다 들어보니 그 엄석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책을 샅샅이 읽고 그 책을 교본 삼아 따라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짓거리를 많이 했다.


그 날은 아들이 급식을 두번 배식 받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메뉴가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본 엄석대가,

 

니는 왜 밥을 두 번씩이나 처먹나? 니가 거지 새끼냐?

 

하면서 급식판을 아들에게 둘러 엎었다. 그 장면을 급식 지도 하던 담임샘이 목격한 것이다.

담임샘은 엄석대에게 그 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낱낱이 적게한 진술서를 받았다. 그리고 학급의 다른 친구들의 증언을 적은 참고인 진술서도 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담임샘으로 부터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먼저 불렀습니다. 일단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사실 ㅇㅇ이가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더라구요.

 

자식이 고통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는 부모의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건 학폭의 수준을 넘어 중범죄였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평정심을 찾았다.

 

아직 어려서 그러니 잘 대처해야지. 혼내기보다는 살살 달래야지. 

 

'착한 아이 증후군'이 심한 남편이 예수그리스도 같은 말을 했다. 나는 그 녀석이 옆에 있다면 당장에 뺨이라도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을 지렁이 밟듯이 농락하고 있었다는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엄석대를 중벌에 처하고 아예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벌을 내려도 내 맘속의 분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때마침 군에서 휴가나온 조카가 있었다. 그 조카의 동생도 함께 왔다. 두 조카는 기골이 장대하고 키도 컸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군인 조카가,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는데요?

 

라고 했다. 

 

아니, 아니, 그러면 안되고... 만나서 잘 다독거려보자. 일단 우리 모두 엄석대를 만나러 가자.

 

우리는 엄석대를 만났다. 만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고 놈이 한 짓의 레파토리를 들어보면 분명 <범죄도시>의 '마동석' 삘이 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곱상한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 어디를 봐도 그런 망나니 짓을 할 법하게 생기지 않았다.

 

어디 맛있는 거 파는집 없나? 니가 엄석대구나. 만나서 반갑네.

 

우린 엄석대를 무찌르고 혼내러 온 용사 아니던가? 남편은 엄석대를 다정하게 대하며 머리까지 쓰다듬고 있었다.

 

멋지게 생겼네. 앞으로 우리 ㅇㅇ이랑 좀더 잘 지내라고 지나 가던 길에 들렀어. 이분들은 ㅇㅇ이의 형이야. 

- 안녕하세요? 엄석대가 눈웃음까지 치며 인사를 했다.

 

응, 너 ㅇㅇ이랑 친하냐? 앞으로 더 잘 지내. 혹시 친구들이 괴롭히면 말려주고...

남편은 엄석대의 등을 찬찬히 두드려 주며 말했다.

 

키가 180cm가 넘는 두 조카도 삼촌의 햇볕 정책에 가담하고 있었다.

 

우리는 돈가스를 파는 집에 갔던 것 같다. 

 

많이 먹어. 앞으로 너 멋진 사람 될 것 같아. 딱 보면 알 수 있지.

 

남편과 조카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돈가스를 먹기시작했다. 그리고 엄석대와 ㅇㅇㅇ이도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돈가스를 맛있게 먹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주 다정한 한 가족 같았다. 누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모두 하하, 호호 웃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웃을 자리에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날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아들의 몸에 멍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도 고 놈이 너 괴롭히냐?

아뇨, 그렇지 않아요. 걱정마세요.

 

아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 날 돈가스 집에서의 햇볕 정책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엄석대는 다른 학교로 전학 가지도 않았다. 

 

다만 이듬해 엄석대와 아들은 다른 반이 되었다. 

담임샘이 그렇게 둘 사이를 떼어 놨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것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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