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일상 모둠전

어게인! 어게인!  그날 아침, 딸내미와 나누었던 통화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남편이 폰 스피커는 켜지 않았는데도 딸의 목소리가 내게 들렸다. 딱 한 문장을 정확하게 들었다.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래? 응? 그래서? ㅇㅇ이가?”  옆 방으로 가서 딸과 통화를 끝낸 후에, 남편이 내게로 다가왔다.  “ㅇㅇ이가 다쳤다네. 자전거에서 넘어졌다나? 그래서 머리 수술을 했대. 그나저나 우리가 지금 당장 포항으로 가야 한다는데.” “그, 그래요? 어쩌죠? 그러면 가야죠.”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12년 11월이었다. 딸과 아들, 남매는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딸에게 전화를 받은 날은 수능 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수능 감독을 나.. 더보기
그 화려했던 ‘답’프러포즈! 그 화려했던 ‘답’프러포즈!  딸내미가 Y대 치위생학과 3학년 때였다. 갑자기 휴학하겠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우리는 딸의 의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랬지만 딸은 휴학 처리를 끝낸 후에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었다. 뉴질랜드에서 2년을 보낸 딸이 어느덧 귀국했다. 복학하여 학교에 다니는가 싶더니 아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편입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남동생이 먼저 한동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편입이 쉬운 게 아니라던데?”  그 한마디를 했다가 딸에게 애먼 소리를 들었다. 딸이 진로를 결정하려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한다나? 딸은 화를 버럭 냈다. 그러는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가 .. 더보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아들아, 너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없네? 개발새발 글씨를 썼던 너의 편지를 받아보긴 했지만 말이다.그런데 어제는 너무 했어. 넌 나에게 쓰나미를 준 셈이야. 지난해까지, 닷새 만에 한 번씩 응가를 하더니 올해부터는 사흘 만에 한 번씩 응가하는 게 너의 루틴이잖아? 네가 먹는 식사량이 일정하고 운동량도 같은데 왜 응가 주기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네. 네가 응가하면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치운단다. 그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 오다 보니 엄마 손목이 조금씩 시큰거리기 시작하네. 근데 그저께는 응가 D-day도 아닌데 낌새를 보이더니 2개 정도 했잖아? 그다음 날인 어제는 난데없이 또 응가를 하더라. 요즘 혹시 긴장할 일이 생긴 거니? 너무하네, 정말! 연일 연달아 응가를 하니 엄마가 좀 .. 더보기
병상 일지 병상일지 날이 밝았다. 남편은 이미 아들에게로 갔나 보다. 베란다 통유리 창으로 무더위가 꺾인 가을 하늘이 성큼 들어선다. 나들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이제 나는, 언제라도 집을 나설 수 있는 은퇴자다. 그러나 아무 때나 그럴 수가 없는 신세다. 남편의 실내화가 중문 앞에 얌전히 놓여있다. 그는 매일 그렇게  삶의 바다에 뛰어든다. 그의 아침은 견과류, 구운 달걀, 과일, 찐 감자, 누룽지 등이다. 아무튼, 그는 이 동네의 ‘칸트’라 불릴 정도로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마치 시계추처럼. 올해 초에 정년 퇴임한 나는, 아침 시간에 이제 서두를 필요가 없다. 리모컨을 집어 들며 유유자적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것이 퇴임 이후에 가장 두드러진 행복 포인트다. 아침 식사를 끝냈다. 커피 향을.. 더보기
먼발치에서 가까운 맘으로 썼던 글 먼발치에서 가까운 맘으로 썼던 글‘2024 파리 올림픽’이 성황리에 끝났다. 펜싱, 사격, 양궁, 배드민턴, 탁구, 유도, 태권도 등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응원했다. 오래전, ‘88 서울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던 것과는 사뭇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 시절엔 경기 현장을 화면으로 시청하는 것이 여의찮았다. 대체로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1988년, 대한민국은 ‘서울 올림픽’ 열기로 뜨거웠다.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라는 올림픽 주제가가 온통 울려 퍼지고 호돌이 마스코트가 지천이었다. 그해, 젊은 새댁이었던 나는 시골 벽지에 있던 시댁에 갔다. ‘가을철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한다.’라는 바로 그 가을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부모님의 일손을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갓 돌.. 더보기
시간제 근무 중입니다만 시간제 근무 중입니다만  우리 부부는 시간제 근무 중이다. 오전엔 남편, 나는 오후에, 파트를 맡아 근무한다. 우리는 서로 교대 근무 중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제 근무를 지속해 하고 있지만, 급여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무임 노동이다. 우리 부부가 시간제 근무로 하는 일은 바로 중증 환자인 우리 아들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12년 전에, 불의의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아들은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의식을 잃었다. 세미 코마 상태로 중증 환자가 되고 말았다. 아들의 병상을 돌본 지 열두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아들은 사고 이후 6년 동안은 입원 생활을 했다. 남편은 날마다 입원해 있는 아들에게 갔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았다. 그가 병원에 도착하면 잠시 간병인을 쉬.. 더보기
두 집 살이 오늘부터, 틈나는대로 일상 생활의 다양한 글을 이 카테로리에 탑재할 계획입니다.두 집 살이  짐 들고 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하지만, 오늘도 나는 짐을 챙겨 본가를 빠져 나왔다. 본가에서 챙겨 나온 것은 세탁 망이다. 본가에는 세탁 망이 서너 개 있다. 그런데 세컨하우스에 그 세탁 망이 더 필요하다. 살아보니 그랬다. 이렇듯 본가에서 세컨하우스로, 세컨하우스에서 본가로 짐을 옮기곤 한다. 마치 물건 옮기기 게임을 하는 듯하다. 매일 내 손에 짐이 들려 있다. ‘두 집 살이’란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내 친구, 숙이는 장터 약국집 딸이었다. 그런데 숙이가 때로 윗마을인 우리 동네에 올라왔다. 숙이네 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살던 주야 아버지기도 했다. 그들은 엄마는 .. 더보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