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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다이너마이트'를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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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Tak이네 학급에 수업하러 가는 것이 싫지 않다. 그 반 수업은 내심 기다려진다. 친구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함께 하려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학급이다. 교육과정 운영상 피치 못하게 일주일에 한 번, 7교시 수업이 있다.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7교시에 그반  영어 수업이 있다. 그러나 걱정 없다. 그 반은 7교시일지라도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텐션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지치지 않는 반이다. 졸린다며 엎드려 있는 학생도 없다. 이만하면 교사를 할 맛이 난다. 이런 반이라면 수업할 만하다.

 


 

하지만 그 반에서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 있다. 바로 Tak이다.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배웠을 것이고 초등학교 6년 동안 영어를 접했을 텐데 Tak은 '잉맹'이다. '문맹'(文盲), '컴맹'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을 잉맹(English 맹인)이라 해야 할 듯... Tak은 영어를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어 문법도 꽝이었다.

 

수업을 진행하노라면, 1 분단, 2 분단 쑥쑥 지나간다.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순서가 되면 발표를 잘한다. 어떤 학생은 이때다 싶었는지 한껏 자기 목소리를 낸다. 요즘 학생들은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관종*이다. 그렇게 잘 진행되던 수업이 Tak의 례가 되면 여지없이 랙*이 걸린다. 본인의 수준에 맞게 발표할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과제를 제시해 준다. 그러나 Tak은 대략 난감이다. Tak이 영어를 읽을 수 있어야 뭐라도 시킬 텐데...

 

그런데 Tak의 순서가 되 '일타 강사',  Do 1이 Tak에게 다가간다.

 

"에헤, 이건 말이야. 내 말을 잘 들어봐."

라고 하면서 Tak에게 열심히 알려준다. 그러 Do 2도 말을 보탠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한 번 나를 따라 해 볼래?"

 Tak을 도와준다. 맨 뒷자리에 있던 Sang도 을 지고 Tak의 곁으로 온다. 

점잖은 Chan 뜸직뜸직 거들기 시작한다. 그 반에는 Tak의 몽학 선생이 부지기수다.

 

"이건 말이야, 동사야, 이게 주어가 하는 일을 말해주는 거야. 뭐라고 설명하지? 맞다, 주어가 하는 짓을 표현해 주는 거야. 그걸 '동사'라고 해. 주어, 동사는 말은 들어봤지?"

점잖은 교수가 따로 없다. Chan의 설명이 깨알 같다.

애교쟁이 Eun도 Tak의 영어 공부를 위해 애를 다.

 

"쟤들이 하는 말을 내가 다시 잘 설명해 줄게."

"아, Eun, 고맙네."라고 내가 Eun을 칭찬하면,

"제가 쫌 그렇죠."라고 애교짓을 하며 Tak을 코칭한다.

Eun은, 다른 친구들이 후루룩 알려준 부분을 다시 Tak이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패러프이징* 한다.

 


 

Tak은 영어를 잘 모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 뭣한 면이 있다.

Tak은 자기 물건을 제대로 챙기 못한다. 단원에 필요한 학습지를 스테이플러로 바딩 하여 나눠줬건만 걸핏하면 학습지가 없단다. 그런 Tak 안쓰럽게 는지 그 반의 영어부장 Mi는 자기 학습지를 한 부 더 복사하여 비상용으로 챙겨 다녔다. 혹시 Tak이 학습지를 챙겨 오지 못할 때 빌려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는다.

 

이쯤 되면 Tak은 친구 복이 터졌다고 봐도 된다.

친구들이 알려주면 Tak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귀를 기울다. 그런 Tak의 인성이 대단한 것 같았다.

 

영어에 대해 1도 모르지만  Tak의 표정은 언제나 웃상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Tak을 챙겨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Tak에게 영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Tak이 영어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Tak 스스로 지니고 있던 자존감과 친구들의 협력으로 그의 영어 실력 향상될 것 같았다. 

 

"샘~, 저, 잘하죠?"

Tak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열심히 했어요." Tak이 으쓱하며 말했다.

"아하, 그랬구나. 짱이야."라고 Tak에게 엄지척을 날려 주었다.

내심 불가능할 것 같았던 Tak의 영어 공부 물꼬가 트이고 있었다.

 


 

여름방학 후에, Tak은 영어를 술술 읽어 젖혔다.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이요, 대 변혁이었다.

어느 날, 담임샘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Tak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담임샘은 Tak이 찍었다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참 멋지죠? 우리 Tak이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어? 그러네요. 진짜 짱이네요."

"자전거 타고 집에 가다가 하늘이 멋있어서 한 컷 찍어서 학급 단톡방에 올렸더라구요."

"어머, 그랬군요."

[Tak이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다가 찍었다는 저녁노을 풍경, Tak은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Tak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 그가  달리 보였다. Tak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니...

 


 

축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때도 7교시였다. 그 반 학생들이 방방 떴다.

 

", , ~"

"? ? ?"

"그거 아세요?"

"뭘 알아?"

"Tak이가 이번 축제 때 '솔로 댄서'로 혔어요. 오디션에서 당당히 1등 했대요. Tak이 대단하죠?"

"어머나? 그래?"

그 반 학생들은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친구가 잘 된 것에 대해 그렇게 사심 없이 기뻐하는 그 학생들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우리 학교 제에 솔로 댄서로 뽑힌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전교생이 천명이 넘는데 1000:1이라는 경쟁률을 뚫었다고 봐야 한다.

 

'대단하네. Tak~

'왐마, 뭔 일이 당가?'

 

축젯날 공연 출연자 명단에 Tak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와 있었다.

쫙 쫙 쫙!

 

 

Tak은 '다이너마이트'를 춘단다. 그 유명한 다이너마이트를...

월클 BTS가 세계를 흔들었던 그 춤을 우리의 Tak이 축제 무대에서 추게 된단다.

 

https://www.youtube.com/watch?v=e81ad5MpfQ0

 

 

BTS는 멤버 7명이 그 춤을 췄는데, Tak은 다이너마이트를 혼자서 출 수 있을까?

 

[다이너마이트를 춤추는 Tak]

 

축제에 Tak이 춤췄던 그 영상을 구하려고 Tak에게 부탁했더니 Tak이 카톡으로 보내왔다. Here! (여기요~)하면서...

 

헐, 이제 Tak이도 영어와 친해진 모양이다.

'hear' 하지 않고 'here'이라고 한 점이 대견스러웠다. 춤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Tak이다. Tak의 숨겨둔 발톱을 알게 됐다.

 

 

 


 

 덧글: Jun도 나름 숨겨둔 발톱이 있었다.

 

 지난해 Jun은 영어부장이었다. 그 학급에 하도 영어부장을 하겠다는 학생이 많아서, 가위, 바위, 보로 결정했다. Jun이 가위, 바위, 보에 이겨 영어 부장이 됐다. Jun이 영어부장이 되는 날, 1학기 때 영어부장이었던 Ki는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자기네 반은 망했다고 난리였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영어부장이 되면 안 된다고 투덜 댔다.

 

"걱정 마,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책임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영어부장이야."

나는 Ki의 불평을 불식시켰다.

 

답답한 면은 다소 있었으나 Jun은 영어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됐고 자기가 맡은 일을 잘했다. 그런데 Jun은 지난해 축제 일, 오프닝 무대에 '드론 날리기'를 했다. 장기 부분 오디션에 뽑혔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무대에 설 수 있었다. Jun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거봐,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되지? Ki?'라고 맘 속으로 중얼거렸다.

'Ki야, Jun 걱정 말고 너나 잘해.'

 


 

* 패러프레이징: 재진술(, paraphrase) 또는 어휘 변용(語彙變容)은 미리 언급한 어휘와 뜻이 같거나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의 중복 및 동어 반복을 막고 문장을 쉽게 풀어내는 화술을 말한다.(출처: 나무위키)

 

*관종: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사전)

 

* 랙: '속도 등이 떨어지다', '뒤떨어지다', '지체되다'(예: 문화 지체), '침체되다' 따위 뜻을 가진 영단어. '랙이 걸리다'라는 표현을 보통 사용한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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