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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좌충우돌 사춘기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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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Hee에 대한 첫 기억

 

지난해였다. Hee의 담임이 코로나에 걸렸다. 나는 그 반의 부담임이었다. 그래서 한 주간 동안 담임을 대신하여 그 반을 관리했다.

학년 초에는, 배부된 통신문 하단에 있는 절취선을 잘라 회신받아야 하는 게 많다. 당연히 부모님의 사인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Hee는 그때까지 대부분 회신문을 제출하지 않다. 그래서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Hee 에게서 그 밀린 회신문을 다 챙겨 받을 수 있을까? 

 

일단 예쁜 L자 파일에 통신문을 챙겨 담아 Hee에게 다. 그리고 Hee의 부모님께 전화하여 협조를 부탁했다. 그다음 날이었다.

 

"짠~"

Hee는 대단한 일이나 해낸 것처럼 회신문을 절취하여 그 파일에 담아왔다.  물론 부모님의 화려한 사인 있었다.

Hee 맘만 먹으면 그런 건 챙겨 올 수 있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제출하 않으면 수합 것 마감할 수 없. 그런 까지  학생들  턱이 없다.

 

"와우, Hee, 대단하네. 잘 챙겨 왔구나."

밀린 통신문을 그렇게  챙겨 받았던 일이 Hee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그 일 외에, Hee는 수업시간에 나대지 않았고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스포츠 데이, 날쌘돌이

 

지난해 스포츠 데이 때였다. 그날, 이어달리기, 계주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운동장 반 바퀴 정도를 따라잡는 게 아닌가? 그렇게 리 달리는 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바로 Hee였다. Hee는 알고보니 날쌘돌이였다. 바람의 아들이었다. 스포츠 데이 이후에 Hee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Hee 종아리 탄탄했다. 일명 말 근육이었다. 그래서 Hee가  잘 달 수 있었나 보다.

 

"와우, 정말 날쌘돌이던데?"

Hee를 칭찬했다. 자 Hee는 혀를 약간 내밀며 씽긋 웃었다.

 

미들 스타 리그의 '스타', Hee

 

지난해, 우리 학교는 인천 유나이티드 미들스타 리그 축구 경기에 열광했다. 교장 선생님이 직접 코치가 되어 선수들을 훈련시켜 준우승의 쾌거를 이루었다.

 

 Hee도 미들스타 멤버였다. 축구 경기에서 달리기가 빠른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공을 남달리 빨리 잡을 수 있다. 또한 빨리 공을 커트할 수도 있다. 발 빠른 Hee는 간간이  넣었다. 선배들 틈에 끼어 Hee가 골을 넣었다. Hee는 스포츠에 능한 학생이었다.

 

https://brunch.co.kr/@mrschas/173

 ▲ 지난해에 있었던 미들스타 리그 전에 대한 이야기 브런치스토리에 발행 적 있다.

 


 

우리 학교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학급 대항 점심리그를 하고 있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종목이다.

올해, 어느 날이었다.  

4교시 끝나는 시간에,

 

"선생님, 점심시간에 저희 반을 응원해 주실 거죠? '점심리그' 축구 경기 있어요."

Hee의 진한 부탁을 받았다.  축구 경기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교무실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축구 경기를 관전했다.

 

 Hee가 하프 라인쯤에서 공을 찼다. 그 공은 날쌨다. 공은 쏜살같이 날아 골대의 그물을 흔들었다. 멋진 골인이었다. 슈퍼 원더골이었다. 아름다운 골, 장거리 골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극장골이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 순간 Hee가 교실 쪽을 바라보며 '골 세러머리'를 했다. 아마 나에게 보내는 제스처인 듯했다.

 

사랑에,  울고 웃는 날들~

 

지난해, Hee는 계단을 서너 걸음 만에 달려 내려오곤 했다. Won이라는 여학생을 만나러 왔다.

수업 마치는 종소리  멘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으로 달려왔다. 날쌘돌이 Hee는 그게 가능했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 멘트

 

 Hee의 교실은 5층 서쪽 끄트머리, Won의 교실은 4층 동편 끄트머리에 있었다.  매 시간마다 Hee는 Won에게로 달려 내려왔다.

 

그냥 그렇게 풋사랑이 진행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Hee는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저희 학급에 수업 들어오시는 샘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ee의 담임이 전체 메시지를 보내왔다. Hee가 자퇴를 하겠다고 단다. 사실상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라 자퇴라는 게 없다.

 

그때부터 Hee의 출결이 들쭉날쭉했다.

이유는, Won과의 사랑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다. 그렇겠다. 사춘기에 사랑보다 더 중한 것이 있을까?

잠시 그러더니 가을 무렵부터는 Hee 학교에 정상적으로 잘 나왔다. 둘이 다시 사귀게 된 모양이었다.

 

분위기 좋은 학급에서의 면학

 

올해도 Hee의 학급을 가르치고 있다. 그 반은 12개 학급 중 영어 평균 성적이 제일 높다. 학급 전체가 최선을 다 한다. 수업 분위기도 엄청 좋다. 그 반에는 아무도 수업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을 것 같은 Hee도 공부하는 분위기에 젖어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른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면학 분위기 조성된 그 학급에서 Hee는 꼼짝없이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학급에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그 대체로 조용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다.

 

"저 아시죠? 저한테 어려운 것 시키지 마세요."

Hee가 2학년이 되자마자 별도로 교무실에 와서 말했다.

 

지난해 내가 했던 수업 방식을 그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수업 시간에 순서대로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 알겠어. 너에게 별도로 맞춤형 과제를 줄게. 미리 와서 부탁하니 기특하네."

그런 것으로 마루어 보면 Hee는 상황을 예측하고  살아갈 궁리도 하는 녀석이었다.

 

900일이 넘은 그들의 사랑이 저무려는가?

 

우리 학교는 본관과 후관 사이에 '작은 도서관, 북카페'가 있다. 그 옆에는 '하늘 데크'도 있다. 눈썹을 휘날릴 정도로 바쁜 학교생활이지만 연강일 때는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교무실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하여 잠시 쉬려고 북카페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 학생들이 없었다. 다만, 두 녀석, Hee와 Won이 꽁냥 거리고 있다.

 

"야, 너네는 참 오래 사귄다."

"..." 둘이 그냥 웃었다.

 

"올해는 너네 바로 옆 교실이라 좋겠네."

"..."

또 웃기만 다.

 

"도대체 너네는 며칠이나 된 거야?"

"저희는 이제 900일 다 됐어요."

Won 바로 답했다. 매일, 사귄 지 며칠 째인지 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사귀었겠네?"

"맞아요."

 

그들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그들 사랑을 가꾸어 왔을까?

 

방황의 소용돌이

 

또다시 Hee가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점심리그 축구 일정이 다 끝났다. 미들스타 리그도 중도에 탈락하여 끝이 났다. 그래서 Hee에게는 학교에 올 낙이 없게 생겼다. 오직 Won만이 Hee가 학교에 나올 이유였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반에 수업하러 들어갔더니 Hee가  자리에 없었다.

 

"Hee, 조퇴했어요. 걔네 엄마가 와서 데려갔어요."

불갈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지?'

속으로 궁금했다.

 

다음 날,

 

"Hee Won 헤어졌대요."

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에 오는 것 Hee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Hee는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고 물의를 일으켜 선도위원회에 불려 갔댄다.

 

 Hee가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어깨가 처져있었다. 기가 빠진 모습이다.

Won과의 사랑이 다시 이어지거나 새로운 사랑이 이루어져야 Hee가 기운을 차리려나 보다.

 

아니면 내년에 스포츠 데이, 점심 리그, 미들스타가 속속 재개되어야 Hee의 삶이 신이 나려나? 좌충우돌, Hee의 나날이 어째   불안하다.

 

이번 겨울을 Hee가 무사히 잘 보내 좋겠다. '중2'라는 터널을 잘 통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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