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어교실 엿보기

그들의 교집합은 과학이었다

728x90
반응형

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 생각이 든다.

 


 

올해, 두 개 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학년을 '걸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한 개 학년만 전담할 때보다는 긴장이 더 된다. 1학년 수업을 한 후에 그다음 시간에 2학년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2학년 수업을 하는 학급에 이미 아는 학생도 있었지만 낯선 학생이 꽤 있다.

그 반의 So는 지난해 가르쳤던 학생 아니다. 기가 좀  보였다. 

새 학년, 첫 시간이었다. 1단원 학습지를 배부하는 중이었다.

 

"저어기, 선생님, 아무래도 이건 잘못된 것 같은데요."

 

미처 수업 진도가 나가지도 않은 학습지에서, So가 오타 하나를 찾아냈다. 등에서 진땀이 났다.

 

'보통 학생이 아니구나.'

 일로 So를 쉽게 기억하게 됐다. So는 중1 이라기보다는 고3 같은 학생이었다.

얼굴도 성숙되어 보이고 목소리도 구성졌다.

 


 

그 반에 Eun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Eun은 So와 성격이 대조적이었다. So가 'E'라면 Eun은'I', 그냥 봐도 그렇게 보였다.

 

Eun 가르치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Eun은 참 예뻤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글씨도 깔끔하게 잘 썼다. 그런 Eun에 비하면 So는 컬링 헤어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아침마다 자기 엄마용 에어랩으로 머리 손질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건 용의 위반이다. So는 특이한 코트를 입거나 맨투맨, 혹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그건 복장 위반이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Eun과 So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Eun은 발표 순서가 되면 마치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영어를 못하는지? 발표하는 것이 두려운 건지? Eun 목소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 Eun에 비하면 So는 생각이 유연해 보였다. So는 자신이 발표하는 내용이 틀리든지 말든지  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창의적으로 생각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듯했다. 일반 상식이 풍부해 보였다. 긴장하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So의 그 배짱을 Eun에게 조금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un의 영어 성적은 바닥이었다. Eun은 아무래도 영어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영어 울렁증'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In을 Eun의 멘토로 세웠다. 학습지를 할 때나 교과서의 활용 문제 등을 해결할 때면 숫제 In이 Eun을 도와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멘토인  In 지필 고사,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남을 가르칠 수 없다.  In은 문법 개념을 제대로 익혔다. 그랬기 때문에 Eun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Eun의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수행평가에서 Eun의 성적이 꽤 향상됐다. 노력한 보람이 눈에 보였다. 조금씩 영어의 벽을 넘어갔다.

 

 


 

과학달을 맞이하여 교내 과학 발명품 경진대회 있었다. 수상자 명단이 엘베 앞에 붙어 있었다. 그 명단에 So와 Eun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So는 '골든벨 알람시계'를, Eun은 '옷장 받침대'를 출품했나 보다. 그 학년에서 343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내부 결재 공문을 확인했다. So도 So지만 Eun이 대단해 보였다. Eun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So와 Eun의 숨겨둔 발톱을 알게 됐다. 둘 다 과학에 재능이 있었다.

 

"Eun이 과학을 잘하나 보죠?"

"네에, 과학을 좋아해요."

"과학 성적은 어때요?"

"좋아요."

"아, 네에..."

"왜요?"

"영어 시간에 너무 힘들어해서요."

"그래요? 의외네요?"

 

과학 샘과 얘기를 통해 Eun이 과학을 꽤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 ,  전시실에서 So의 그림을 발견했다. '화소'라는 그림 동아리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갤러리에도 그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미술 시간에 완성한 작품이란다. So는 뭐든지 잘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영어를 꽤 잘한다. 그런 것에 비해 시험 점수가 만점은 아니었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So와 같은 학생이 상급학교에 가면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So가 그린 그림 / '화소' 전시 작품]

 


 

서서히 Eun도 발표할 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수업시간마다 Eun에게 눈을 맞추고,

 

'넌 잘할 수 있어. 좀 더 노력하면 너도 영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될 거야.'라고 속으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Eun을 만날 때마다 관심을 보이 칭찬했다. 특히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몇 번이고 말해 주었다.

 

그깟 영어가 뭐라고? 영어가 맘 여린 Eun을 잡는 것 같다.

Eun이 벌벌 떨며 영어 발표를 하고 있을 때면, 그냥 와락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한 두 개씩 실수를 하던 So가 이번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So와 Eun의 중2 과정은 대 성공이다.

 

So와 Eun은 다른 성향이지만 과학으로 치자면 서로 교집합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