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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숨겨둔 발톱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두 개 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학년을 '걸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한 개 학년만 전담할 때보다는 긴장이 더 된다. 1학년 수업을 한 후에 그다음 시간에 2학년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2학년 수업을 하는 학급에 이미 아는 학생도 있었지만 낯선 학생이 꽤 있었다.
그 반의 So는 지난해 가르쳤던 학생이 아니었다. 기가 좀 세 보였다.
새 학년, 첫 시간이었다. 1단원 학습지를 배부하는 중이었다.
"저어기, 선생님, 아무래도 이건 잘못된 것 같은데요."
미처 수업 진도가 나가지도 않은 학습지에서, So가 오타 하나를 찾아냈다. 등에서 진땀이 났다.
'보통 학생이 아니구나.'
그 일로 So를 쉽게 기억하게 됐다. So는 중1 이라기보다는 고3 같은 학생이었다.
얼굴도 성숙되어 보이고 목소리도 구성졌다.
그 반에 Eun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Eun은 So와 성격이 대조적이었다. So가 'E'라면 Eun은'I', 그냥 봐도 그렇게 보였다.
Eun도 가르치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Eun은 참 예뻤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글씨도 깔끔하게 잘 썼다. 그런 Eun에 비하면 So는 컬링 헤어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아침마다 자기 엄마용 에어랩으로 머리 손질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건 용의 위반이다. So는 특이한 코트를 입거나 맨투맨, 혹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그건 복장 위반이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Eun과 So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Eun은 발표 순서가 되면 마치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영어를 못하는지? 발표하는 것이 두려운 건지? Eun의 목소리는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 Eun에 비하면 So는 생각이 유연해 보였다. So는 자신이 발표하는 내용이 틀리든지 말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창의적으로 생각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듯했다. 일반 상식이 풍부해 보였다. 긴장하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So의 그 배짱을 Eun에게 조금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un의 영어 성적은 바닥이었다. Eun은 아무래도 영어를 무서워하는 듯했다. '영어 울렁증'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In을 Eun의 멘토로 세웠다. 학습지를 할 때나 교과서의 활용 문제 등을 해결할 때면 숫제 In이 Eun을 도와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멘토인 In은 지필 고사,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남을 가르칠 수 없다. In은 문법 개념을 제대로 익혔다. 그랬기 때문에 Eun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Eun의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수행평가에서 Eun의 성적이 꽤 향상됐다. 노력한 보람이 눈에 보였다. 조금씩 영어의 벽을 넘어갔다.
과학달을 맞이하여 교내 과학 발명품 경진대회가 있었다. 수상자 명단이 엘베 앞에 붙어 있었다. 그 명단에 So와 Eun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So는 '골든벨 알람시계'를, Eun은 '옷장 받침대'를 출품했나 보다. 그 학년에서 343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내부 결재 공문을 확인했다. So도 So지만 Eun이 대단해 보였다. Eun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So와 Eun의 숨겨둔 발톱을 알게 됐다. 둘 다 과학에 재능이 있었다.
"Eun이 과학을 잘하나 보죠?"
"네에, 과학을 좋아해요."
"과학 성적은 어때요?"
"좋아요."
"아, 네에..."
"왜요?"
"영어 시간에 너무 힘들어해서요."
"그래요? 의외네요?"
과학 샘과 얘기를 통해 Eun이 과학을 꽤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 때, 전시실에서 So의 그림을 발견했다. '화소'라는 그림 동아리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갤러리에도 그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미술 시간에 완성한 작품이란다. So는 뭐든지 잘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영어를 꽤 잘한다. 그런 것에 비해 시험 점수가 만점은 아니었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So와 같은 학생이 상급학교에 가면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서서히 Eun도 발표할 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수업시간마다 Eun에게 눈을 맞추고,
'넌 잘할 수 있어. 좀 더 노력하면 너도 영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될 거야.'라고 속으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Eun을 만날 때마다 관심을 보이며 칭찬했다. 특히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몇 번이고 말해 주었다.
그깟 영어가 뭐라고? 영어가 맘 여린 Eun을 잡는 것 같았다.
Eun이 벌벌 떨며 영어 발표를 하고 있을 때면, 그냥 와락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한 두 개씩 실수를 하던 So가 이번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So와 Eun의 중2 과정은 대 성공이다.
So와 Eun은 다른 성향이지만 과학으로 치자면 서로 교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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