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어교실 엿보기

아무래도 방목형 담임인 듯

728x90
반응형

쉬는 시간마다 담임이 자기 학급을 챙기는 분 있다.

그런가 하면, 그냥 중요한 것만 챙기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담임도 있다. 그런 분을 일컬어 '' 담임이라 한다.

담임이 꼼꼼하게 잘 챙기 학급은 오히려 교과 시간에 말썽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다. 담임의 눈길을 피 교과 시간에 허튼짓을 하곤 했다.

그런데 방형 담임 학급 교과 시간에 바짝 긴장한다. 담임에게서 느끼지 않았던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경우, 그런 학급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한다. 연대의식이 끈끈하다.

 

10반 담임은 방목형인 것 같다. 나는 그 반의 부담임이다. 부담임은, 담임이 출장을 가거나 부득이한 경우가 생겼을 때 담임 역할을 대신한다. 10반 담임은 신규 발령을 받은 체육 교사다.

 


 

스포츠 데이 때, 10반 담임은 온종일 대회 일정 맡아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부담임인 내가 그 반을 챙겨야 했다. 나는 그날, 10반 학생들과 함께 보냈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 전날부터 걱정이 됐다.

 

혹시 누가 다치면 어쩌지?

제때 자기들이 참가해야 할 순서를 놓치지는 않으려나?

질서를 잘 지키겠지?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기우였다. 

평소에도 자기들끼리 올망졸망 모여서 특별실로 수업하러 는 걸 봤었다. 마치 참새 짹짹, 오리 꽥꽥, 하듯 잘 이동하고 있었다. 그 학급에는 천지 분간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이 2~3명 정도 있고 부적응 학생도 2명이나 있다.

그 부적응 학생이 등교하지 않은 날의 출석부의 특기사항에,

 

7번 ??

9번 ??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적어두는 경우는 처음 봤다. 근데 창의적 발상 같았다. 왜 교하지 않았는지 담임은 모른다는 의미였다. MZ세대 담임다웠다. 출석부는 어차피 보조 장부이니 담임만 알아보면 된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빵 터졌다. 대부의 담임들은, 'ㅇㅇ번 ×××, 미인정 결석'이라고 적어두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학급의 다른 친구들이 우연히 출석부를 보더라도 그렇게 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개인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라고 기록하는 것도 괜찮겠다.

 


 

스포츠데이 당일, 10반 학생들은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한 몸처럼 움직였다. 새떼처럼, 청둥오리 떼처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나 부적응 학생들을 잘 챙겨서 움직이고 있었다. 공동체였다. 운명 공동체...

 

그 반에는, 날쌘돌이 Dam이 있다. 또한 거미손 Baek도 있고 골잡이 Na도 있다.

 

릴레이 경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분명히 10반 팀이 뒤처지고 있었다. 그런데 Dam이 바통을 이어받더니 성큼성큼 달려 선두로 치고 나오는 게 아닌가?

 

10반 이겨라!

10반 이겨라!

 

나는 목이 터지도록 응원했다. Dam이 앞질러 갈 때, 나도 모르게 Dam과 함께 내달렸다. 부담임의 정이 용솟음쳤다.

 

평소에 점잖은 Baek이 골키퍼를 맡은 10반은 축구 경기에서는 천하무적이었다. 어떤 공도 척척 막아내는 Baek은 슈퍼 세이브였다. 백전불패요, 선방의 연속이었다. 골키퍼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경기였다. 한 편, 필드에서는 자그마한 Na의 개인기를 어느 학급도 당해내지 못했다. Na는 어떤 공이라도 낚아채어 자기 팀의 공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Na가 공을 잡으면 중거리 슛은 물론 각도가 나오지 않는 위치에서도 과감하게 슛을 날려 골을 만들었다. 하프 라인쯤에서 차는 공이 변화구처럼 휙 꺾여 골대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결국 10반이 축구경기에서 우승했다.

 

수업시간에 봤을 때는 뭣하나 해낼까 만구 션찮아 보이는 학생도 학급 친구들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팔자 줄넘기'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오후쯤에야 10반 학생들은 담임과 맞닥뜨렸다.

담임이 맡아 진행하고 있던 단체 줄넘기 타임이었다. 학생들은 방송에 따라 제시간에 그 자리에 섰다. 미리 리허설로 연습도 했다. 담임은 10반이 잘하고 있는지 챙겨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부담임인 나는 순간순간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10반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오픈 마인드다. 모두가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다. 그것은 이번 총학생회 임원 선거 때 증명이 됐다. 학생회 임원 총 7명 중 5명이 10반에서 배출되었다.

이런 10반을 보면, 방목형이 좋은 것 같다. 아니면 10반 담임이 좋은 학생들을 만난 것일까?

 

10반이 자기들끼리 서로 소통하며 단체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기특했다. 담임은 학생들을 믿고, 학생들은 담임을 믿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10반 담임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방목형 엄마였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과학 영재였던 줄 아세요?"

"그것도 또 모르시죠?"

"엄마는 우리한테 별관심이 없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그 브랜드 신발 얼마나 신고 싶었는지 아세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20년 전 얘기를 하면서도 딸은 목이 멘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혹시 무관심하셨던 거 아녜요?"

"난 학원 한 번도 안 다녔잖아요."

 

딸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방목형의 끝판왕 어미였다

일부러 그렇게 방목형 부모가 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랬다. 자녀들을 세심하게 챙기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그들의 공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자녀 교육방식이었다. 또한 자식을 몰아 세워 상위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히고 싶은 맘이 없었다. 몸과 맘이 건강하여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나는 비자발적 방목형 엄마였다.

 


 

10반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각자도생을 잘하는 것 같다.

내 자녀들도 그랬다. 대학생이 되면 그들에게 곧바로 신용카드를 그냥 쥐어줬다. 그래도 쓸 돈, 안 쓸 돈을 가릴 줄 알았다. 우리 자녀들은 그렇게 각자도생 했다. 방목형 부모의 바운더리 안에서...

 

담임과 학생 간, 부모와 자식 간, 사장과 직원 간에 신뢰가 탄탄하다면 '방목형'이 참 좋은 것 같다.

 

 

 

 

728x90
반응형

'영어교실 엿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텐션을 끌어 올리다  (2) 2024.04.27
짓궂은 것은 감기였다  (4) 2024.04.24
이런 학급 또 없습니다  (2) 2024.04.19
그들의 교집합은 과학이었다  (2) 2024.04.18
좌충우돌 사춘기 소나타  (2)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