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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꼴난 영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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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되면 할 일이 많다. 그중에 영어부장을 뽑는 일은 참 중요하다. 영어부장이 잘 정해지면 한 해 수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영어부장은 영어를 잘할 필요는 없다. 투표를 하여 뽑는 것도 아니다. 첫 시간에 자원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그러나 교실마다 그 영어부장을 해보겠다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만고에 통하는 방법, 바로 가위, 바위, 보를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예선을 한 후에 다시 이긴 사람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준결승, 결승을 거쳐 최후의 1인이 영어부장이 된다.  

 

"얍!"

 

기합을 넣으며 가위, 바위, 보를  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침 점을 쳐보고 하기도 하고 두 손을 비틀어서 위를 향해 손 안을 들여다보는 등 이겨보려고 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꼴난 영어부장이 뭐라고?

 

그러나 이 영어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때가 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 때였다. 비대면 수업 시기에 학생들에게 공지할 내용이 있으면 영어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 영어부장이 학급 단톡방에 안내 내용을 올렸다. 코로나 시절에 영어 수업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각 학급의 영어부장 '덕분'이었다.

 

영어부장마다 성향이 달랐다. 대부분 자기 몫을 잘 해냈다. 마치 영어부장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듯한 학생도 있었다. 이 역할을 하면서 그들은 책임감 훈련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야무지게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그들을 보면, 그들이 취업할 때 추천서를 써주고 싶은 맘이 들 정도였다.

 


 

Hyeon은 그날 독감으로 조퇴했다. 그런데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 보니 TV 화면에 영어 CD가 띄워져 있었다. 자신이 아파서 집에 갈 정도인데도 영어부장의 일을 잊지 않은 Hyun에게 감동받았다.

 

노트북으로 자료를 검색할 일이 있어서 각자의 노트북 챙겨두라고 영어 부장에게 일러둔 적이 있다. (요즘은 노트북이 교실의 '보관함'에 비치되어 있다.)

수업하려 들어가니 30명이 넘는 학생이 하나 같이 노트북을 켜고 있었다. 진풍경이었다. 마치 국회 회의실에 입장 느낌이었다. 영어부장이 미리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채근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어부장은 바로 Mi였다. Mi는 영어 시간이 되면 영어부장이라는 것에 책임감을 단단히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너, 왜 학습지가 없어? 도대체 학습지가 어디 갔을까?"

 

Jong이 학습지를 챙겨 오지 않았다.

 

"이거~"

 

Mi가 학습지 묶음을 Jong에게 내민다.

 

"어? 이거?"

 

Mi가 내미는 학습지 묶음을 보고 내가 놀라며 말했다.

그 학습지는 갱지가 아니라 백상지였다. 대부분 학습지는 갱지로 인쇄하여 나눠준다.

 

"제가 한 부 따로 복사하여 가지고 있었어요."

 

세상에, 학습지를 별도로 복사하여 가지고 다니는 영어부장은 처음이었다.

 


 

올해 11반 영어부장 Jo는 속이 훤히 보였다. 그는 기를 모아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영어 부장이 되었다.

 

"선생님, 롤케익 주실 거죠? 카톡 기프티콘 주실 거죠?"

 

Jo가 기를 쓰고 영어부장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메신저 역할을 했던 영어부장에게 교사의 맘을 전하고 싶어서 롤케익 기프티콘을 준 적이 있었다. 몰래 보냈건만 철없는 영어부장 Min이 그걸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Jo는 기회가 닿는다면 그 영어부장을 꼭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샘, 영어부장 선물 언제 줘요?"

 

Jo는 두 번  정도 내게 와서 선물을 언제 주느냐고 물었다.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인데 맡겨놓은 것을 찾듯 말했다. 약간 얄밉기도 했지만 중2 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에구, 이렇게 속 보이는 게 창피하지도 않은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어부장이 된 이후 Jo의 학습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영어부장의 역할도 잘했지만 자신이 영어부장이라는 것 때문에 영어 수업시간에 모범생이 되었다. 학년 말이 되어 'e 알리미' 주소록에서 Jo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폰에 등록했다. 번호가 맞는지 확인할 겸 Jo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Jo가 시험을 잘 봤다고 하는 말이 미심쩍었다. 수업시간에 그는 중위권 수준이었다. 그리고 우리 학교 영어 시험 문제는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잘 봤다고 하기에 80~90 점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노라 하는 학생들도 한 두 개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게 우리 학교 영어 시험이다.

 

헉, 그런데 Jo가 영어부장 하다가 봉 잡았다. 자세 바로 잡고 영어 공부한다 싶더니 Jo의 점수가 100점이었다. Joe는 이 성적으로 자신감이 생겨 앞으로 쭉쭉 영어 공부를 잘할 것 같다. 대박이다.

 


 

결국 영어부장 Jo는 그토록 받고 싶었던 롤케익도 받았고 학년말 기말고사에 만점도 받았다.

 

내 뇌피셜은 말한다.

 

어쩌면 Jo가 롤케익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부모님께 그것을 드리고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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