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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물감태=생감태를 주문했다. 그냥 습관처럼 감태를 샀다.
겨울이 되면 감태를 산다. 그것으로 감태 김치를 담근다. 그걸 '감태지'라고 한다. 감태지를 먹으면, 아들의 옛적 모습이 마구 그립다. 아니, 아들이 마구마구 그리울 때 감태지를 먹는다. 그래도 감태 향으로 그 그리움이 좀 가라앉는 듯하다.
전라도에서는 김치를 '지'라고 한다. 경상도 여자인 나는 전라도 사람과 결혼했다. 시댁 쪽 사람들은 김치를 김치라고 하지 않았다. 김치를 '지'라고 했다. 그래서 수많은 김치에 '지'를 붙여 부르는 것을 익히 들었다. '지, 지, 지...'를 무던히도 많이 들었다.
결혼 전에 내가 알았던 '지'는 단무지의 '지'뿐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단무지의 '지'가 김치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생지, 싱건지, 묵은지, 갓지, 익은지, 신지, 솔지(부추김치), 파지, 배추지, 열무지, 오이지, 채지 등등.
그리고 짓국(물김치)이란 말도 있었다. 심지어 밑반찬은 짠지라고 했다.
이러한 말의 유래를 잘 정리해 둔 글이 있었다.
[고장말탐험] ‘김치’와 ‘지’ / 이태영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949.html
내가 감태지를 처음 먹어본 것은 2012년 추석 명절 때였다.
시댁은 모였다 하면 식구가 한 부대만큼 많았다. 나는 그 문중의 17대 종손이고 또한 7남매 맏며느리다.
결혼 후에 뭣도 모르고 일독에 빠져 살았다. 앞에 펼쳐진 일을 해치우느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꾀를 부리거나 못한다고 했어도 됐을 것 같다.
명절에 친정에 갈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상황상 시댁을 빠져나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많은 식구들과 찾아오는 집안 어른들을 챙기다 보면 그냥 친정은 없는 요량하고 살아야 했다.
시누이나 시동생을 끼고 살아야 할 때가 있었다. 시누이나 동서의 산후조리도 했다.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앞에 벌어지는 일은 내 몫이라고 여겼다.
어느 명절엔가 모인 사람의 수를 세 본 적이 있다. 모두 33명이었다. 지금은 더 많아졌다. 그럴 때는
개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정도는 거뜬히 해치웠다.
생굴을 껍질 째 몇 자루 챙겨 오면 그걸 데쳐 '동물의 왕국'처럼 모두 고개를 수그리고 다 까먹었다. 잠시 후에 보면 굴 껍데기가 몇 포대나 됐다.
그 해 추석에도 그렇게 모두들 굴을 까먹고 있었다.
"우리, 이거 한 번 먹어봐요. 우리 교회 집사님이 담가 주신 거예요."라고 하며 막내 동서가 김치 통을 열었다. 그 순간 주방 가득히 향긋한 향이 퍼졌다. '감태지'라고 했다. 생전 처음 먹어 본 맛, 그 향긋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며느리 넷은 그 자리에 앉아서 감태지를 먹기 시작했다. 며느리들도 식성이 좋았다.
시댁 원가족들이 잘 먹어 치운다고만 할 것도 아니었다. 우리 며느리들도 감태지를 그냥 한 자리에서 다 해치울 판이었다. <확 깊은 집에 주둥이 긴 개가 들어온다.> 라던 옛말이 옳았다.
그날 우리는 자녀들의 장기 자랑을 봤다. 대학 3학년이던 아들은 그 장기 자랑에 사회를 봤다.
'어느새 자라 저렇게 어엿하게 가족들 앞에서 사회도 보네.'
내심 그런 아들이 든든하고 멋져 보였다. 뿌듯했다.
응원 단장이었던 딸은 응원곡에 맞춰 한 바탕 신나게 쇼를 했다. 아들은 사회를 보던 중간에 CCM도 부르고 노래도 했다. 딸은 아들이 부르는 노래에 피아노 반주를 했다.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던 명절이었다. 이제 애들을 다 키웠구나,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보냈다.
'저 녀석이 노래도 잘하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주방으로 달려가 감태지를 집어 먹었다. 입안에 남아 있는 향이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계속 먹고 싶었다. 아들의 노랫소리가 감태지의 향과 어우러졌다. 분위기 있는 바닷가에 가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때 아들이 불렀던 노래를 지금도 기억한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낫씽 베럴'이었다.
근데,
"엄마, 프랑스에서 친구 '앙리'가 들어왔다네요. 지금 포항으로 갈래요."
아들은 급하게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일상이 늘 바쁜 녀석이었다. 부지런히 살고 있는 듯했다. 스물세 살, 그때는 인생에서 가장 바쁠 때였다.
그날 아들을 본 것이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감태지를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작별 인사하고 떠났던 아들은 한 달쯤 뒤에 사고를 당했다. 현재 인지는 제로 상태, 그리고 몸은 전신 마비가 되어 있다.
12년을 병상에 누워있다. 금방이라도 "엄마~ "라고 할 것 같은 아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 아들은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깬다. 그러나 자는 것이나 깬 것이나 매 일반이다. 눈을 떴다는 것과 감았다는 차이 밖에 없다. 아들은 온통 밤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야, 너의 이름은 벽창호야."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엉엉 울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개그로 현실을 헤쳐나가는 게 더 편했다. 아들 앞에 가면 그래서 개그를 몇 번 쳐준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에...
"야, 너의 휴대폰에 보니 '줄 돈', '받을 돈'이라고 정리해 놓았더라. 어서 일어나서 정산해."
"눈 깜빡을 한 번만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봐. 눈을 꾹 눌러서 더블 클릭을 해야 니가 정신이 있다고 볼 거야."
"깜빡깜빡 두 번 해봐 그게 방정식 풀기 보다는 쉽잖아? 개도 소도 다 할 수 있어, 그깟 거."
"사고 났던 그날 저녁에 너 이 닦지 않았지?"
"넌 도대체 배고픈 것 밖에 모르냐? 엄마가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입맛만 다시냐? 너는 너만 생각하냐?"
"엄마 보고 싶었어? 나도 온종일 니가 보고 싶었어. 그래도 인마 내가 너를 짝사랑하는 것 같다."
대체로 나는 아들에게 가면 이렇게 농담한다. 아들은 눈만 껌뻑거릴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벽에 대고 말을 했더라면 벽이 메아리로라도 내게 응답했을 것이다. 12년간 벽에 대고 말했다면 벽에 구멍이라도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농담하며 살아왔던 게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브런치 작가님 중에 '정신과 의사의 따스한 골방'이라는 필명을 지닌 분이 있다. 그분의 글에서 본 글귀가 내게 큰 위로가 됐다.
https://brunch.co.kr/@warmsmallroom/10
그 글을 보면, 스트레스를 줬던 사건을 대하는 방식 중에, 부정, 투사(남 탓), 억압, 유머, 억제 등이 있는데 '유머'와 '억제'가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12년간 나름 괜찮은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마음도 튼튼한 갑옷이 필요해요' 중에서 캡처]
다시 소울 푸드, 감태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감태를 모르는 분도 많을 것 같다. 감태는 아무 때나 수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12월이 되어야 가능한 모양이다. 내가 구입하는 사이트의 상품 설명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래서 1년 내내 먹으려면 12월에 구입해서 손질한 후에 소분하여 냉동 보관해야 한다.
감태 손질법과 요리법은 간단하다.
씻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소금물에 씻는다. 잡티가 이따금 나오기도 한다.
생수에 액젓, 매실 엑기스를 가미한다. 대파를 건중건중 썰고, 매운 고추도 듬성듬성 썰어서 다른 양념 없이 버무린다. 그런 후에 볶은 국산 통깨를 뿌리면 간간이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향긋한 바다향이 가득하여 감칠맛이 난다. 그런 후에 숙성을 시켜 갈색이 되면 먹는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우리는 감태지를 담은 날부터 먹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집 뒷 베란다에서 감태가 숙성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아들의 옛적 모습이 마구 그리워서 나의 소울 푸드, 감태지를 먹는다. 그러면 그리움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uRsorIufY4s(하나님의 은혜)
https://www.youtube.com/watch?v=uRsorIufY4s(낫띵 베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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