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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의 글쓰기 습작 도우미 모로동 할머니 모로동 할머니는 아랫 담에 사셨다.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틀니가 없던 시절이라 그랬으리라. 이가 몽땅 빠진 할머니의 입은 마치 복주머니를 끈으로 조여 맨 입구 같았다. 내 유년 시절에 모로동 할머니는 하룻저녁도 빼놓지 않고 웃담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셨다. 물론 나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놀려고 오셨지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편지 한 장만 써다오.” 할머니는 한지를 덕지덕지 바른 호롱 등을 들고 오셨다. 바람이 센 날은 등 속의 호롱의 심지가 흔들려서 불이 꺼지기도 했다. 할머니의 닳은 흰 고무신은 종이처럼 얇았고 그게 찢어질 때면 실로 꿰매기도 했다. 할머니의 고쟁이 바지 속에는 구겨진 양면 괘지가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의 일인 것 같.. 더보기
14. 다듬잇돌 고향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가야산 자락이 나의 고향이다. 가야산의 매력을 아는 자가 많으리라. 가야산의 남산인 매화산의 매력과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도 유명하다. 언젠가 그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수필 문맥이 떠올랐다. 박지원의 글에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강물을 건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보고 듣는 것이 수시로 병이 됨이라.’ 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 되짚어보니 더욱 맘에 와닿는다. 고향 마을은 유판마 혹은 유촌(兪村)이라고 불렸다. 동구 밖에서 고무줄놀이, 학교 놀이를 했던 곳에 큰 버드나무가 있어서 버들류 ‘柳’의 유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 마을은 앞산에서 쳐다.. 더보기
13. 더 늦기 전에 찾고 싶어요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에서 유명인들이 오래전에 헤어졌던 지인을 찾아서 해후하는 장면을 종종 보아 왔다. 때로는 지인을 찾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브런치'를 통하여 꼭 찾고 싶은 분이 있다. 더 늦기 전에, '브런치는 사랑을 싣고'라고 외치며 그분을 만나 뵙고 싶다. 고교 진학을 앞둔 때였다. 면 소재지에 있던 고등학교에서 교사 한 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대학까지 시켜주겠다고 했다. 이웃 고장인 거창에서도 몇 분의 교사가 찾아왔다. 그 고등학교는 미국과 연계되어 있어서 유학까지 보장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공무원은 발령장 하나면 다른 학교로 이동하게 되는 거다. 그런 말은 믿을 필요 없다.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하는 거..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37】'라이징스타' 요람기 한 학기에 두 번 정도는 조별 활동으로 수행평가를 본다. 수행평가는 과정 중심 평가다. 그래서 여러 단계를 관찰하여 과목별 세부 특기 사항에 입력한다. 수행평가의 맹점은 무임승차다. 그 폐단을 막기 위해 활동지 뒷면에 자신이 했던 활동을 일일이 기록하도록 했다. 조별 활동을 할 때 조를 잘 짜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의 조 안에는 리더 격의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습이 부진한 학생도 함께 활동을 하게 된다. 자기들끼리 맘에 드는 사람끼리 모이기 해서도 안되고 잘하는 사람만 가득 모여 있어도 안 된다. 각 조의 두뇌 총량의 평균을 고려해야 한다. 남녀 구성의 조합은 물론 우등생과 열등생 등을 적절히 배정해야 한다. 눈으로 학생들의 앉은자리를 훑어보며 조를 편성하고 있는 교사를 학생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다. .. 더보기
14)인생 대본을 볼 수는 없잖아요? 내게는 남다른 걱정이 있다. 11년째 중증 환자로 누워있는 아들 때문이다. 아들은 자기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일순간의 사고로 말미암아 준수한 청년이었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끝까지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숨 쉬고 하품하는 정도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11명의 손길이 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런 아들을 남겨 두고 혹시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그렇다고 아들이 먼저 떠나는 것도 우리는 상상하기 싫다. 사고 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한 지인이 나를 위로한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있다. "저렇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가는 게 나은데... 서로 .. 더보기
13)병원 노마드 생활을 해봤습니다 동료 교사가 식중독으로 입원한 아들을 간병하기 위해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는 말을 했다.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은 할 짓이 못되네요. 이런 생활은 며칠만 해도 병날 것 같아요." "그 심정을 제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합니다." 그분이 간밤에 어떻게 보냈을지 나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만 6년 동안 중증 환자인 아들과 병원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실 상황을 훤히 알 정도다. 그곳에서 지냈던 모든 일들이 또렷이 생각난다. 우리가 병원에서 보냈던 시간이 하룻밤의 꿈처럼 아련하다. 매주 금요일에 퇴근하면,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유급 휴가를 주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에는 간병인을 대신하여..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36】'양해를 구하다' 를 영어로? 지난여름, 1 학기말 자투리 시간이었다. 자유 학기 프로그램 일색이었던 중학교 1학년들이 한 학기를 마무리하던 때였다. "쪽지 단어 시험을 보겠어요." "그게 뭔데요?" "자기가 아는 대로 영어 단어를 쓰면 돼요." "성적에 들어가나요?" "여러분은 성적을 산출하지는 않아." "그러면 백지로 내도 되겠네요." "모든 행동에는 상벌이 따르지." "혹시 잘못 본 사람은 '자기반성' 교실에 가나요?" "단어를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그러면 맘대로 할래요." "후회할 텐데..." 단어시험을 본다는 말에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차시에 걸쳐 매 수업 시간마다 단어 시험을 봤다. 1학기에 배운 범위에 있던 단어였다. 단어 시험이 끝난 후 서로 시험.. 더보기
12) 아들이 평지풍파를 만나다 아들이 한동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밥그릇을 자기가 챙겨서 먹은 격'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홍시가 입에 떨어지도록 기다리듯 했더라면 아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한동대학교에 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학교 생활을 신나게 잘했다. 다양한 공동체 활동은 물론 SFC(Student for Christ) 위원장이 되어 유명무실하던 그 신앙운동 단체를 활성화시켰다. 특히 개.독.모.(개혁주의 독서모임)에서 독서와 토론으로 영성을 키웠다. 목사인 아버지가 읽다가 포기한 어려운 신학 서적을 모조리 챙겨가서 단숨에 읽어 재꼈다. "저는 아무래도 머리에 특수 칩이 내장된 것 같아요. 이런 책이 제게는 어렵지 않아요. 그런 쪽으로 특화된 뇌를 가졌나 봐요." 아들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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