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발치에서 가까운 맘으로 썼던 글
‘2024 파리 올림픽’이 성황리에 끝났다. 펜싱, 사격, 양궁, 배드민턴, 탁구, 유도, 태권도 등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응원했다. 오래전, ‘88 서울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던 것과는 사뭇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 시절엔 경기 현장을 화면으로 시청하는 것이 여의찮았다. 대체로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1988년, 대한민국은 ‘서울 올림픽’ 열기로 뜨거웠다.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라는 올림픽 주제가가 온통 울려 퍼지고 호돌이 마스코트가 지천이었다. 그해, 젊은 새댁이었던 나는 시골 벽지에 있던 시댁에 갔다. ‘가을철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한다.’라는 바로 그 가을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부모님의 일손을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갓 돌을 지낸 딸내미를 안고 밭이나 들에 나갈 수 없었다. 마당에서 나물과 채소를 다듬거나 부엌에서 일군들의 새참을 준비했다.
온 나라가 올림픽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농촌은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라디오를 통하여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청취하거나 메달 소식에 대한 뉴스를 전해 들었을 때 소리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시동생은 올림픽 경기를 응원하느라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형수님, 우리나라가 이겼어요! 여자 핸드볼, 금메달이래요!” 레슬링과 양궁 경기가 진행될 때 이웃집에서도 고함이 들렸다. 시동생이 농사일 거드는 것에 집중하지 않아 시어머님이 잔소리를 해대셨다.
“올림픽이 도대체 뭐다냐? 그것이 밥 맥여 준다냐? 싸게 언능 일 좀 하랑 께.”
“이 사람 보소, 시방은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하는 때여, 이녁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 좀 하소.”
시아버님이 타박하시면 두 분이 티격태격하셨다.
“와따메, 송신 나서 못 살것소, 올림픽인가 뭔가가 끝이 나야 농사일을 할 수 있을랑 갑네.”
그렇게 떠들썩했던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KBS라디오에서 올림픽 체험 수기를 공모한다고 했다. 시댁에서 올림픽을 간접 체험했던 에피소드로 글을 완성했다.
<먼발치에서 가까운 맘으로>라는 제목으로‘88 올림픽 체험 수기 공모전’에 지원했다. 수많은 경험자의 생생한 열기를 제치고 나의 수기가 장려상에 입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도 거의 없던 시절에 그 당선 소식을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KBS한국방송에서 있었던 시상식에 참석했다. 전남 화순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나들이해야만 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위해 눈에 띄게 큰일을 한 후에 그 소감을 적은 분들이 받아야 할 상을 내가 받는다는 게 좀 죄송했다. 상금이 얼마인지 모르고 투고했던 글인데 예상치 않았던 두둑한 상금 봉투를 받았다. 그런 공돈을 만져본 적이 없던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남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돈을 셌다.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샐러리맨의 한 달 치 월급 정도의 가치가 될 듯하다. 30만 원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가슴이 설렌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 알 것 같았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기쁜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다. 남편을 미처 만나지 못한 채, 그 상금을 소매치기당하거나 차 사고가 나면 어쩌냐 하는 걱정이 됐다. 사람이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게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글은 내 인생에서 가장 문학적 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 일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마당에 있던 평상에서 수상을 축하하며 파티를 열었다. 내가 한 턱 쐈다. 87년생인 딸내미는 겨우 돌쟁이였다. 아기는 덩달아 기분이 좋았는지 옹알거리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풋풋했던 감성이 새삼 그리워진다. 상금을 들고 남모르게 설렜던 순수한 그때가 엊그제 같다. 88 올림픽 중계방송을 들었던 시댁 집은 이제 허물어졌다. 시부모님은 다 돌아가셨다. 그래도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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