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너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없네? 개발새발 글씨를 썼던 너의 편지를 받아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제는 너무 했어. 넌 나에게 쓰나미를 준 셈이야.
지난해까지, 닷새 만에 한 번씩 응가를 하더니 올해부터는 사흘 만에 한 번씩 응가하는 게 너의 루틴이잖아?
네가 먹는 식사량이 일정하고 운동량도 같은데 왜 응가 주기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네. 네가 응가하면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치운단다. 그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 오다 보니 엄마 손목이 조금씩 시큰거리기 시작하네.
근데 그저께는 응가 D-day도 아닌데 낌새를 보이더니 2개 정도 했잖아? 그다음 날인 어제는 난데없이 또 응가를 하더라. 요즘 혹시 긴장할 일이 생긴 거니?
너무하네, 정말! 연일 연달아 응가를 하니 엄마가 좀 힘들었어. 그래도 괜찮아.
너, 그거 알아?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엄마는 너의 응가가 좋아. 난 돈보다 너의 응가가 더 좋아. 네가 응가를 하지 않으면 그건 보통 큰일이 아닐 거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무튼 응가한 것은 참 잘했어. 미안해하지 마.
아 참, 있잖아. 점점 너의 머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줄 모르지? 넌 사자 머리를 좋아했었는데. 빡빡이 모양으로 삭발한 백구 머리로 변해가고 있어.
네가 머리 모양에 신경을 얼마나 쓰는지 잘 알아.
너의 중학교 시절에, 두발 단속에 걸려도 학교 규칙을 따르지 않았지. 학교에서 틈만 나면 부모님의 지도를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었고.
근데 지금은 침상 환자로 누워있으니 짧은 머리가 답이란다. 그래야 머리 감기기도 편해. 놀라지 마. 이번엔 완전히 빡빡 밀어서 이발해 버렸어. 그게 싫으면 얼른 정신 좀 차려. 네가 계속 이렇게 인지 없이 누워있으면 영영 백구 머리로 해 버릴 거야. 네가 그 머리를 무척 싫어할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리끼리 얘기지만 누구한테 보일 일도 없잖아.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물어볼게. 네가 눈을 ‘깜빡깜빡’하라고 하면 그렇게 할 때도 종종 있더라. 엄마 좋아? 누나 좋아? 매형 좋아? 활보쌤 이모들 좋아? 라고 물어보면 깜빡깜빡하더니, 아빠 좋아? 라고 했을 때 왜 깜빡거리지 않았어? 아빠가 항상 너를 귀찮게 재활 운동을 시키니까 그러는 건가? 너를 챙기며 간병했던 아빠한테 너무했네. 아빠가 섭섭하셨겠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아,
엄마는 네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 그리고 지금 행복해.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 곁에서 잘 견뎌줘서 고마워.
네가 사고를 당했을 때가 2012년 말쯤이었으니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어. 2024년도 저물어가고 있으니 너는 13년 차 투병 생활로 접어들 판이야. 이 긴 세월 동안 울며 걸어야 했던 길이었지만, 인생은 두 길, ‘울음’ 아니면 ‘웃음’이잖아. 우린 어쩌다가 웃음 쪽의 길을 걷게 됐어. 캄캄한 동굴 속 같은 절망의 여정이지만 하루하루를 헤치며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무엇보다 잘 견뎌준 네 덕분이야. 돌아보니 긴 하루 같은 12년이었어.
너의 병상 곁에서 웃으며 농담도 하고, 위트와 개그로 마음을 달래며 여기까지 왔어. 벽창호 같은 너와 우린 항상 소통되고 있었다고 생각해. 우리가 우스운 얘기를 하면 넌 깊은 한숨을 쉬곤 했잖아. 그게 너가 웃는 것이라고 여겼어. 앞으로도 웃으며 가자.
너랑 나랑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웃음 한 스푼, 행복 두 스푼, 긍정 세 스푼을 섞어서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힘차게 나아가자. 우리의 미래를 우리끼리 잘 만들어가자. 너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 편지가 너에게 작은 웃음과 행복을 전해주길 바란다.
사랑해, 아들아!
2024년, 12월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마음을 담아 띄워 보낸다.
'좋아요'와 '구독' 부탁 드려요~~ 댓글로 소통해도 좋아요^ ^ |
'일상 모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게인! (6) | 2024.12.03 |
---|---|
그 화려했던 ‘답’프러포즈! (4) | 2024.12.02 |
병상 일지 (4) | 2024.11.30 |
먼발치에서 가까운 맘으로 썼던 글 (6) | 2024.11.29 |
시간제 근무 중입니다만 (8) | 202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