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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실 엿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33】<Mr. Uppity> 속에 숨어있는 나를 만나다 Mr. Uppity (거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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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난 부끄러움이 참 많았다.

집에 손님이 오면 우리 남매들은 정지방(부엌 쪽문에 딸려있는 아주 작은 방) 속으로 들어가 숨 죽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 집 애들은 참 조용하네요."

 

도회지에 살던 친척은 숨어버리는 우리를 뭣도 모르고 칭찬했다.

 

"애들이 숫기가 없어서..."

 

어머니는 우리를 그렇게 두둔하셨다.

 

 

열등의식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다. 예쁜 옷을 입는 아이, 키가 큰 아이, 얼굴이 예쁜 아이, 집안이 부유한 아이 등등이 눈에 띄었다. 혼자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니 점점 야코가 죽었다. 그런 애들을 보다가 나를 훑어보면 잘난 구석이라곤 없었다. '나는 참 못났다.'라는 생각이 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반장이 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좋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부반장이 된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봤던 시험에서 어쩌다 덜컥 1등을 했다. 그때부터 나라는 존재가 친구들에게 부각되었다. 어딘가에 숨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슬슬 관심받게 되었다. 세상에 못난 내가 부반장이라니... 부반장을 반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반장 앞으로 나와서 인사하고 각오도 한마디 하세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학급 앞에 서긴 했으나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숨 막힘을 해결하는 본능적 돌출구가 펑펑 우는 것이었다.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엉엉 울었다. 울기만 했던 내가 지지리도 못나 보였다. 그래서 또 속이 상했다. 어린 나는 그런 자리에서 울어버린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열등의식은 한 층 더해갔다.

 

창피함

 

부모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다투셨다. 다투는 소리는 담장을 넘어 온 동네에 다 들릴 지경이었다. 골목을 나서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가난해도 괜찮고 공부를 못해도 무슨 상관이랴? 그때부터 나는 집안이 행복하면 그게 최고라고 믿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공부  썩 잘했다. 글을 잘 쓰고 운동도 잘했다. 그러나 동네의 몇몇 남자 애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니가 그래봤자, 이 가시나야, 너네집은 맨날 그 모양 그 꼴이잖아?"

 

라고 놀리는 듯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해 다니는 대인 기피 증세가 생겼다. 아주 고단수로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기술이 늘었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이 눈에 띄면 교묘하게 그 사람을 피할 수 있다.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한 적이 꽤 있다.

 

 

잘난 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러브레터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남자애들과 시시덕거리며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였던지 편지를 보내오는 남자애들이 딱 싫었다. 나는 그 남자애들에게 드러내놓고 쌀쌀맞고 도도하게 대했다.

 

점방집 아들 A는 초록색 잉크로 쓴 러브레터를 4~5년간 보내왔다. 그 편지에 질려 나는 초록색 자체를 한동안 싫어했다. 나는 한 번도 그 초록색으로 쓴 편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한 번은 그 초록색 편지를 후루룩 읽어봤다. 글씨는 삐뚤빼뚤했고 맞춤법도 틀린 게 많았다. 그래서 더욱 그 편지의 매력이 없었다. 내게는. 

 

어떤 철학자는 인생을 뭐라고 했느니 어쩌느니 하는 현학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자기 형이 보는 책에서 베낀 냄새가 났다. A의 편지는 내용이나 모양새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나는 그 편지 속에 있는 A의 마음 따위는 눈곱만큼도 헤아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남자 애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코흘리개 B는 한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한 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송창식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EmyRxNqp32I

 

B는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그 노래를 크게 부르고 사라졌다. 그건 더욱 싫었다. B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예쁠 것도 없는 내게 왜 남자애들이 편지를 보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 시절 그 시골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좋게 봤던 것 같다. 좋으면 예쁘게 보이는 것이니까.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당돌한 사람, 무례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재수 없는...

 

'잘났어. 증~말 아이 부끄러워.' 

 

그때를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부끄러움과 열등의식 그리고 창피함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 내게 사춘기 사랑이 밀려오니 나는 거만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방어기제로 잘난 체하다가 그것이 내 성향으로 굳어버린 것 같다.

 


 

못나고 모가 났던 내 성격을 다듬고 빚는데 한평생이 걸렸다.

 

아들이 사고를 당하여 11년째 중증 환자로 누워있게 되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부드러워졌다.  나의 잘난 체하는 거만함이 점점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속의 마음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그 속에 있는 마음은 하나같이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침상에 누운 아들이 못난 엄마를 변화시키고 있다. 중증환자 아들이 나를 다듬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못난 엄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 임희정 작가님(아나운서)이 발행한 브런치북,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고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더욱 많이 달라졌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omyparents

 

평생 건설현장에서 50년을 넘게 노동하며 살아온 아빠. 평생 주부로 40년을 넘게 남편과 자식을 위해 쌀을 씻은 엄마. 부모님을 생각하며 나는 항상 궁금했다. "아빠는 왜 맨날 지쳐 보일까?" "엄마는 왜 항상 초라해 보일까?" "나의 부모는 왜 매일 삶이 버거울까?" "나는 왜 아빠의 직업이 부끄러울까? " 가난하고 부족한 줄 알았던 나의 삶은, 차고 넘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온전해질 수 있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이 책을 흡입하듯 읽었다. 그리고 우리가 흘깃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그분이 바로 임희정 작가님의 부모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작가님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

 

이제는 사람을 예사로이 대하지 않게 되었다. 이 책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싹을 틔워 주었다.

 


 

이번에 읽은 <Mr. Uppity>(거만 씨) 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숨어 있는 나를 만났다.

가진 것 많은 부자, Mr. Uppity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만하고 무례하게 대한다. 그러다가 꽃 속에 있는 요정을 만나 요정 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Mr. Uppity는 잘난 체하고 거만하다가 요정 사이즈만큼 조그맣게 쪼그라들게 된다. 그곳의 왕은 그에게 엄포를 놓는다. 앞으로 무례하고 거만하면 쪼그라들게 될 것이라고...

 

원래 크기로 돌아온 Mr. Uppity가 공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에게,

"꺼져버려!"라고 윽박지른다. 그 순간 Mr. Uppity는 소년의 발등 높이 만하게 쪼그라든다. &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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