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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구없던 봄 이야기 "그해 2월에는, ‘가장 어정쩡한 달, 2월’이라는 시 구절이 내게 확 들어왔다." 교대를 졸업하고 2년 먼저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나 있던 S와 O에게 가서 그 칙칙한 2월의 시간 전체를 닳아 없애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2월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남해 미조의 새벽 배는 몹시도 부지런하여 밤새 잠 못 이룬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나마 찬란한 해돋이는 그 맘을 조금이나마 위로했다. 밤새 불었던 해풍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고 동네에서 쉽게 부를 수 있던 돌팔이 의사가 와서 아픈 주사를 한 방 놔주고 말없이 가버렸다. 그 이후로 얼마나 더 아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전의 일이지 않은가? 2월이 오면 지금도 가시지 않은 트라우마를 느낀다. [몸과 맘.. 더보기
(2) 오일장 장돌뱅이 어머니는 농사꾼으로 살다가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또한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당신의 자식들이 한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라 여기셨다. 논에서는 벼농사, 밭에서는 채소를 수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바가지(지명)' 논 다섯 마지기 '띠뱅이(지명)' 밭 하나, 그리고 한 평 될까 말까 했던 앞산 밑에 있던 정구지(부추) 밭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5남매 입에 풀칠도 근근이 할 판이었다. 어머니가 농사일에서 눈을 돌려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내가 아직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나는 '고령장'에 가야 하니 옆집 아제 따라서 학교 댕겨 오거래이." 입학식날 아침에 어머니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부리나케 고령장으로 향하셨다. 그날은 오일장 중에서 고령장이.. 더보기
(1) 기와집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어디 쯤 에서 부터 해낼 수 있을까? 내 유년의 끄트머리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가장 아득한 곳에서 떠오르는 기억은 이것이다. 우리 집의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던 날이었다. 아마도 내가 너댓 살 쯤이었던 것 같다. 가난이 뭔지? 인생이 뭔지? 그런 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기와를 이는 그날은 기분이 왠지 좋았다. 신이 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와 이는 일을 돕느라고 우리 집에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의 흙바닥에 밥상을 놓고 한창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차림이라 평소보다 반찬 가짓수가 많았던 것 같았다. 학이 그려져 있던 사기 접시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지글지글 전을 부쳤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정신 없어서 죽겠구만, .. 더보기
2) 아들 낳는 비책이 있을까? 아들낳는 비책이 있을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건강상태 자가 진단 앱'을 여는 일이다. 1번 문항은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체온을 재야 한다. 37.5도 이상의 고열이 있다면 일단 '일상 멈춤'을 해야 했다. 내가 아침마다 사용하는 디지털 체온계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막대형에 비하면 간지 난다. 코로나 이후에 대부분의 가정이 디지털 체온계를 한 두 개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값도 예전만큼 비싸지 않다. 비접촉 적외선 측정방식인 '이마 체온계'를 사용할 때마다 오래전에 있었던 체온계에 얽힌 일이 떠오르곤 한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 딸을 낳은 후에 둘째를 가지기 위해서 소위 가족계획을 세웠다. "연년생은 안 돼요. 그.. 더보기
1) 남존여비 사상을 가졌더랬어요. 제가~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 하기도 했고 또한 받아 본 적도 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한다. 환갑이 다 된 어떤 분이, "지금이라도 딸을 낳을 수 있다면 당장에 아기를 갖겠다."라고 했다. 주변에 보면 딸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들에도 질문을 하면, "딸이 더 좋아요, 딸이 좋잖아요?" 대부분은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께 괄시를 받으셨다. 위로 오빠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아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던 때였다. 할머니는 산모에게 애썼다는 말 대신에 가마솥뚜껑을 시끄럽게 여닫으며 큰 소리로 역정을..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20】무드가 있는 위로 지난 화요일이었다. 그 전날 밤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시쳇말로 '조시'가 영 아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지러운 것은 아니나 뭔가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은 수업을 5시간이나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한두 분의 교사가 코로나 확진으로 출근을 못하는 판국에 내가 병가를 낸다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기어서라도 학교에 가고 싶었다. 내 수업은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어찌어찌 끝냈다. 그러나 그다음은 도저히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몸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장악하고 학생들을 끌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너 번 현관문 쪽..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19】영어보다 축구에 진심인 영어 교사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역사가 짧지만 학생들이 반듯하고 학력이 우수하다. 그래서 매년 신입생이 많이 몰려온다. 학급 수가 줄고 한 학급의 재적이 줄어드는 추세인 요즘, 우리 학교는 예외다. 과대 학교, 과밀 학급이다. 그러한 것에 비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의 축구실력은 별로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생각을 완전히 둘러엎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학교 미들스타 팀이 승승장구하더니 결국 결승 고지까지 도달했다. 우리 학교 미들스타 팀에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했던 축구부 출신도 없고 개인 기량이 뛰어난 학생도 없었다. 나는 사제동행 축구시합을 할 때 직접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었다. 그들은 일단 근성이 부족하고 필드에서 상호 대화하는 요령도 없었다. 경기 도중에 실수하는 친구를 원망하며 구시렁대는 소리가 ..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18】캘리그래피 꽃이 활짝 폈습니다. 캘리그래피 수강 제6번째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캘리그래피 글씨에 걸맞은 간단한 삽화도 곁들이는 기법을 배웠다. [수업 마무리에 게시된 작품들] 역시 학생들은 기대 이상의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학생들 작품 중에서 몇 컷을 캡처하여 올려본다. [감성 파릇한 학생들 작품] 학생들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파릇한 맘들이 들여다 보인다. 역시 감성이 다르다. 견본이 있는데도 창의적으로 해낸 작품도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구상을 하고 그림을 곁들인 학생의 창의력이 대단해 보인다. [ㅎㅎ 강아지가 잠시 쉬는 모양이다. 메시지가 보인다.] 나도 강사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열심히 작업을 했지만, 내 작품을 분석해보면 풍선의 크기를 좀 더 다양하게 하고 배치를 한가운데로 모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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