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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교실 엿보기 23】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지난해 가르쳤던 E는 '함구증'이었던 것 같다. 1년간 그 학생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모둠별 과제에 동참하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했다. 졸지도 않았다. 학습지 과제나 교과서의 빈칸을 채우는 걸 보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의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예외 없이 순서대로 발표를 하거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E의 순서가 되면 학생들은 조용해진다. 나는 E가 잘 해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가령 대화를 듣고 답을 체크하거나 선다형 문제 등을 하도록 한다. 그럴 때마다 E는 손가락으로 정답을 가리켰다. 학생들은 그런 E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에 E가 답을 잘 맞히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우~ 워얼~" 그럴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모둠별 수행 평가 때였다. 모..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22】폰트 출시 스토리 캘리그래피를 배우면서 폰트 출시에 도전해봤어요. 제가 출시하겠다고 의뢰한 폰트는 '최종본'입니다. 옆 자리의 동료께 "이 글씨 어때요?" 했더니 손뼉을 치면서 좋아합니다. "그 폰트로 시를 쓴다면 참 예쁠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궁서체 / 공병각체] 한 학생에게 어느 필체가 제일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세 번째 글씨가 감성이 있어 보여서 좋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을 한참 하다가 '최종본'을 출시하겠다고 의뢰했습니다. 2주 후에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폰트가 나올 예정입니다. 뿌듯하네요. 폰트체 이름은 '향기와찬양체'입니다. 손글씨에 자신이 없었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캘리그래피 강의를 3개월 더 참석하고 나면 필체가 좀 더 수려해질 것 같습.. 더보기
【 영어교실 엿보기 21】창피함은 내 몫이었다 캘리 그래피 시간이 돌아왔다. 5~6교시 연강이다. 앞 시간인 5교시 수업 중에 칠판에 부착되어있는 교내 욕설 없는 주간, '고운말'에 관한 이모티콘이나 캘리 작품 공모 라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 우리 이번 시간에는, 반듯체, 공병각체, 또박체, 세로선 사선으로 긋기, 전체 둥글게 쓰기, 흘림체 등을 잘 연습하고 다음 시간에는 '고운말' 공모에 출품할 캘리 작품을 만들어 보기로 해요. 라고 말씀하시며, 강사 선생님이 계획된 수업을 변경하여 고운말 관련 캘리그래피 작품 만들기로 진행하셨다. 6교시에 학생들에게 종이를 하나씩 나눠주고 욕설 없는 주간을 맞이하여 광고 원고처럼 카피를 생각해서 캘리그래피로 표현하기로 했다. 나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칠판에 적힌 샘플 문구를 보고 글씨를 썼.. 더보기
1. 출구없던 봄 이야기 "그해 2월에는, ‘가장 어정쩡한 달, 2월’이라는 시 구절이 내게 확 들어왔다." 교대를 졸업하고 2년 먼저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나 있던 S와 O에게 가서 그 칙칙한 2월의 시간 전체를 닳아 없애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2월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남해 미조의 새벽 배는 몹시도 부지런하여 밤새 잠 못 이룬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나마 찬란한 해돋이는 그 맘을 조금이나마 위로했다. 밤새 불었던 해풍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고 동네에서 쉽게 부를 수 있던 돌팔이 의사가 와서 아픈 주사를 한 방 놔주고 말없이 가버렸다. 그 이후로 얼마나 더 아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전의 일이지 않은가? 2월이 오면 지금도 가시지 않은 트라우마를 느낀다. [몸과 맘.. 더보기
(2) 오일장 장돌뱅이 어머니는 농사꾼으로 살다가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또한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당신의 자식들이 한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라 여기셨다. 논에서는 벼농사, 밭에서는 채소를 수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바가지(지명)' 논 다섯 마지기 '띠뱅이(지명)' 밭 하나, 그리고 한 평 될까 말까 했던 앞산 밑에 있던 정구지(부추) 밭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5남매 입에 풀칠도 근근이 할 판이었다. 어머니가 농사일에서 눈을 돌려 장사를 시작한 것은 내가 아직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고 지칭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나는 '고령장'에 가야 하니 옆집 아제 따라서 학교 댕겨 오거래이." 입학식날 아침에 어머니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부리나케 고령장으로 향하셨다. 그날은 오일장 중에서 고령장이.. 더보기
(1) 기와집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어디 쯤 에서 부터 해낼 수 있을까? 내 유년의 끄트머리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가장 아득한 곳에서 떠오르는 기억은 이것이다. 우리 집의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량하던 날이었다. 아마도 내가 너댓 살 쯤이었던 것 같다. 가난이 뭔지? 인생이 뭔지? 그런 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기와를 이는 그날은 기분이 왠지 좋았다. 신이 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와 이는 일을 돕느라고 우리 집에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의 흙바닥에 밥상을 놓고 한창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차림이라 평소보다 반찬 가짓수가 많았던 것 같았다. 학이 그려져 있던 사기 접시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지글지글 전을 부쳤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난다. "정신 없어서 죽겠구만, .. 더보기
2) 아들 낳는 비책이 있을까? 아들낳는 비책이 있을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건강상태 자가 진단 앱'을 여는 일이다. 1번 문항은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체온을 재야 한다. 37.5도 이상의 고열이 있다면 일단 '일상 멈춤'을 해야 했다. 내가 아침마다 사용하는 디지털 체온계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막대형에 비하면 간지 난다. 코로나 이후에 대부분의 가정이 디지털 체온계를 한 두 개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값도 예전만큼 비싸지 않다. 비접촉 적외선 측정방식인 '이마 체온계'를 사용할 때마다 오래전에 있었던 체온계에 얽힌 일이 떠오르곤 한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 딸을 낳은 후에 둘째를 가지기 위해서 소위 가족계획을 세웠다. "연년생은 안 돼요. 그.. 더보기
1) 남존여비 사상을 가졌더랬어요. 제가~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 하기도 했고 또한 받아 본 적도 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한다. 환갑이 다 된 어떤 분이, "지금이라도 딸을 낳을 수 있다면 당장에 아기를 갖겠다."라고 했다. 주변에 보면 딸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들에도 질문을 하면, "딸이 더 좋아요, 딸이 좋잖아요?" 대부분은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께 괄시를 받으셨다. 위로 오빠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아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던 때였다. 할머니는 산모에게 애썼다는 말 대신에 가마솥뚜껑을 시끄럽게 여닫으며 큰 소리로 역정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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