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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앞에서
신호등 앞 건널목은 서둘러 건너고 싶다,
그러나 빨간 눈 부릅뜨고
절대 안 돼
죽고 싶냐
껌뻑껌뻑 신호등이 눈총을 준다
신호등 빨간불 앞에서 나노미터 만한 휴가를 갖는다
그 찰나에 별 생각을 다 한다
일상을 멈춘 채
맞은편에서 발목 묶인 몇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 노트북 가방을 든 신사는 집을 사러 가는 중?
입꼬리가 올라갔다
- 비니 모자 쓴 중년의 여인은 아들이 휴가 나옴?
손에 잔뜩 먹거라를 들고 있다
- 천지 분간 못하는 초딩은 PC방으로 가고 있나?
출발선 앞 육상 선수 모양새다
- 유모차에 실린 새싹 둥이는
건널목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식별하고 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테슬라, 혼다 어코드, 봉고...
- 내 삶의 신호등은 고장 난 것 같다*
12년 전에 켜진 삶의 빨간 불이
초록으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만유의 주께 신호등 AS를 신청해야 할 듯
신호등 앞에서, 나는
초록불을 기다리며
말없이 서 있다
* 2012년 대학 3학년이었던 아들이 사고로 중증환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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