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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벗어두고 신발 벗어두고 그가 실내화를 벗어두고 나갔다  변명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그는때로는 로봇 같지만그게 바로, 만성적인 그의 근성이다 그는 실내화를 벗어놓고 일상의 바다로 간다 어떤 날은 가지런히또 어떤 날은 내던지듯 그가 뛰어들 파도의 높이는벗어둔 실내화를 보면 안다 내가 벗어던진 신발은 늘 어지럽다내 일상처럼 할머니가 벗어둔 코고무신은 반듯했다몇 번이고 신발을 정돈한 후에 극약을 삼키셨나 보다삶을 내던질 사람은신발 매무새를 가지런케 하나 보다더 이상 할 일이 없던 할머니의 신발은 나란히 차근했다 그의 실내화는 적당하게 널브러져 있다내가 벗어던진 신발은 헤벌쭉하다 더보기
아들 생각이 나게 하는 감태지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물감태=생감태를 주문했다. 그냥 습관처럼 감태를 샀다. 겨울이 되면 감태를 산다. 그것으로 감태 김치를 담근다. 그걸 '감태지'라고 한다. 감태지를 먹으면, 아들의 옛적 모습이 마구 그립다. 아니, 아들이 마구마구 그리울 때 감태지를 먹는다. 그래도 감태 향으로 그 그리움이 좀 가라앉는 듯하다.  전라도에서는 김치를 '지'라고 한다. 경상도 여자인 나는 전라도 사람과 결혼했다. 시댁 쪽 사람들은 김치를 김치라고 하지 않았다. 김치를 '지'라고 했다. 그래서 수많은 김치에 '지'를 붙여 부르는 것을 익히 들었다.  '지, 지, 지...'를 무던히도 많이 들었다. 결혼 전에 내가 알았던 '지'는 단무지의 '지'뿐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단무지의 '지'가 김치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더보기
캘린더 캘린더 하찮은 듯하나 귀하신 몸이라수소문하여 챙겨 왔고이리저리 돌돌 말아 다림질도 해줬다 고이 모셔잘 걸어 두었건만제 버릇 개 못 주듯습관처럼 벗어던진다 동지섣달 한 겨울에도얇은 옷 한 장만 달랑 입고떨더니만, 기어코 떠났다 버르장머리 없는, 저 년(年) 캘린더가버린 그 년(年)을 생각하지도 말자 다시 다가온 해맑은 캘린더, 이 년(年)도급하게 도망치듯망각 속으로 묻히겠지 더보기
동짓달에 본 보름달 동짓달에 본 보름달너를 보고야 알았네음력으로 보름께 라는 걸 달빛으로 노크했을 텐데오디션 프로를 두 개나 봐 젖히며아우성치는 노래 듣느라너의 외침은 듣지 못했네 블라인드 내려 하루를 마감하려는오늘은 방학하는 날이며교직을 떠나는 날이고주말이요월말이며연말이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쉽게 지새우진 못할 것 같았다 그걸 너끈히 알아차리고창 너머에서 기척을 보냈었구나 동녘 하늘길 다 지나고 새 날에게 길 비켜 주려서쪽으로 막 넘어가려는 너를우연찮게 봤네동짓달 마지막 불금, 23시 50분에 음력 십일월 동짓달에 뜬 보름달에그 누가 의미를 두랴? 봐주는 이 없는 쓸쓸한 무대에서배역을 꽉 채우고흔들리지 않는 제 속도로시간의 줄타기를 또박또박 해내는또바기 같은 동짓달, 보름달 너를 알아차린 나처럼세상의 몇몇 사람도 너를 무시.. 더보기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남은 음식을살짝 주저하다가먹어 치우곤 한다.내 뱃속이 쓰레기통인 양 섭섭한 마음도그냥, 삼켜둔다내 맘 속이 쓰레기통인 것처럼, I- message*를 사용할 찬스도 있었건만 헤이, 자기야,먹던 것  좀  남겨도 돼마음을 좀 드러내면 어때! 그리고 잠시 쉬어가도괜찮아  [사진: 픽사베이] *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 전달법(1-message)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 신념, 가치 등에 대한 주장이며, 일반적으로 '나(I)'로 시작하는 주어 문장으로 표현된다. 더보기
소나무 그대 소나무, 그대 지겹게 무더웠던 지난날솔잎에 묻은 땀 떨궈내어여름을 수습하고조용히 가을 앞에 서던 그대 다들 흥청망청 물들었다가못난 모습으로 스러지던 날에도살며시, 그렇게만  나부끼던 그대 낙목한천(落木寒天)*에는흔들리지 않을 수 없으나결코 떨어지지 않고 푸르게칼바람을 견디는 소나무, 그리고 그대 내 곁에 있어준하이, 소나무! 나의 그대는 소나무였네요  *낙목한천(落木寒天)*: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의 춥고 쓸쓸한 풍경 더보기
묵비권의 아이러니 묵비권의 아이러니 그저께는 그(1) 때문에 속이 상했고어제는 그(2)로 인해 섭섭했다오늘은 그(3)에게 실망했다 상한 맘을펼쳐놓지 못했다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도 비밀만 하나씩 더 늘어간다상처 욱여 담은  맘 주머니가 축 늘어진다 댓잎 서걱대는대나무 숲으로 가볼까? 아니지아니지 곪더라도무덤까지 가져갈그 비밀한 것들을묵비해야 하는 삶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1)(2)(3): 모두 다른 사람[사진:픽사베이] 더보기
잎이 내리네(자작시) 출근길에 나뭇잎이 내렸다. 바람에 흩날렸다. 달리는 차 앞으로 가을 잎이 내렸다. 단풍이 아닌 푸르댕댕한 잎들이 내렸다. 낙엽이 눈처럼 내렸다. 단풍이 되지 못한 잎들이 패잔병처럼 맥이 없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바스러져 떨어지는 낙엽을 보니 맘이 뒤숭숭했다. 기상 이변이 낳은 낯선 풍경이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닌 성싶다. 그 광경을 보니 오래전에 들었던 샹송이 떠올랐다. Tombe la naige! (눈이 내리네!) 그 샹송을 패러디하여 시 한 편을 썼다. 불타는 단풍이 되지 못한 채 시무룩하게 떨어진 잎을 보고 떠오른 시상(詩想)이다. 시절을 놓친 가을 잎이 안쓰럽다.        잎이 내리네 잎이 내리네, 시절 모르는 잎이잎이 내리네, 예쁜 단풍이 되지 못하고꿈에 그리던 그 찬란한 미소가혹한 때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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